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한국의 글쟁이들> : 기록하는 인간의 집념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글쓰는서령 2014. 9. 24. 23:01

 


한국의 글쟁이들

저자
구본준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8-08-1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책은 살아 있다. 그리고 세상은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 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기억의 산물 그리고 잔해를 기록하는 사람들

돌아보니 남은 것이 하나 없고, 다시 돌아보니 남을 것 하나 없기에-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부수적인 혹, 핵심적인 요소들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애틋함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대로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필히 내가 전수하여 널리 알리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기에, 모든 것이 경험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록하는 자가 이러한 산물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더러 어떤 이는 '글쟁이'라고 불렀다. 글쟁이, 그들은 오직 글이면 충분한 사람들이다. 글쟁이는 잊혀진 것, 사라질 것, 생겨난 것, 생겨날 것에 대한 희망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기록을 통해 살아감에 있어 잊혀진 것과 사라진 것 그리고 장차 생겨날 것에 대한 희망을 품고,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를 더러 글쟁이는 '복원력'이 뛰어난 자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글쟁이는 인간의 기억을 회복하여 새 시대의 창조력을 만들어내는 마술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한국의 글쟁이들>에서 더욱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매우 사교적인 소통의 도구, 책과 글쓰기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

사교성의 내밀함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책과 글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람과 사람 혹,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동식물이 어울리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일까. 언어와 비언어를 중심으로 사교적 가치를 지닌 행위와 도구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인간이, 가히 혁명적이라 불릴 정도의 도구를 다루기 시작했다. 바로 책과 글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 생겨났음에도 여전히 책과 글의 위력은 일종의 '넘사벽'과 같다. <한국의 글쟁이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글쟁이 18명을 소개한다. 국문학 저술가 정민, 미술 저술가 이주헌, 역사 저술가 이덕일, NGO 저술가 한비야, 동양철학 저술가 김용옥, 변화경영 저술가 구본형, 만화가 이원복, 자기계발 저술가 공병호,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 민속문화 저술가 주강현, 만화작가 김세영, 건축 저술가 임석재, 교양미술 저술가 노성두, 교양과학 저술가 정재승,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 전통문화 저술가 허균, 서양사 저술가 주경철 끝으로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이 바로 '한국의 글쟁이'로 소개되고 있다. 시대를 움직이는 수많은 바퀴 중, 그 누구도 빠짐없이 골고루 등장한 글쟁이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이거,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 차트 꽂아두는 거치대예요. 우연히 의료용품점 앞을 지나가다 보고 '이거다' 싶어 거금을 주고 바로 산 겁니다." 수백개 차트의 등에는 정 교수가 직접 쓴 제목들이 하나하나 붙어 있었다.(…) 왜 이게 정 교수의 재산목록 1호라고 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글쟁이의 재산은 바로 아이디어와 자료다. 그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아이디어와 관련 1차 자료를 이 차트로 정리해 꽂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로, 책으로 쓸 아이디어가 이리도 많다는 말인가? 정말이었다.」국문학 저술가 정민 中에서

 

「특이한 점은 인용을 잘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의 취향이기도 하다. 인용보다는 사전을 철저히 활용하는 편이다. 서재에는 그래서 사전 코너가 따로 있다. 객관적인 자료들은 철저하게 백과사전류와 각 전문 분야별 사전을 이용한다고 한다. 물론 원어로 된 사전들이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독해가 가능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건축 저술가 임석재 中에서

 

「도올은 책을 쓸 때 대상을 25~35세로 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세월이 흘러도 늘 독서 대중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 연령대에 맞춰 스스로 젊어지는 것이 저술가의 의무이자 철칙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기에 저술가의 생명이 달렸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는가, 그게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여야만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어요."」동양철학 저술가 김용옥 中에서

 

애착과 집념을 초월한 글쟁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글쟁이라 불리는 이들은 저마다 '애착 대상'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 문화, 과학, 역사, 예술, 철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를 오가면서 자기만의 대상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범위와 능력을 측정하기에 이르렀다. 글쟁이가 선택한 방법은 단연 '글쓰기'와 '독서'였다. 끊임없이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나만의 언어' 즉,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게 되었다. 하여 글쟁이는 이제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고자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이른바 문력文力으로 인간 승리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책은 그저 글 많이 쓰고, 책 많이 써낸 사람을 더러 글쟁이라 부르지 않았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 나아가 자기만의 스토리를 철학과 낭만 그리고 애정을 깃들여 글쓰기로 생산할 줄 아는 사람을 '글쟁이'라 불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대단한 글쟁이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글쟁이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글쟁이들은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글쟁이의 집필실에는 영롱한 빛이 점점 밝아지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