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놀이의 반란> : 놀이터에서 사라진 아이들

글쓰는서령 2014. 6. 24. 19:34

 


놀이의 반란

저자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음
출판사
지식너머 | 2013-06-28 출간
카테고리
가정/생활
책소개
당신도 아이와 ‘놀아주는 척’하는 부모인가? 놀이를 학습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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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아이의 춤을 흉내 내면서 노래 가사를 또박또박 불러주느라 진땀 흘리지는 않았는지, 아이가 왼발에 오른쪽 신발을 신었다고 크게 나무라며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는지, 아이가 블록을 높이 쌓다가 무너뜨렸을 때 다음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말부터 하지 않았는지- 아이가 신이 나서 책장을 넘길때 마다 글자에 집중하라고 야단친 적은 없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어떤 목적달성 여부에 따라 대하지 않았을까.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봤을 문제가 아닐까 싶다. 아이와 같이 놀되,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학습의 일부였음을 고백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을까. 당신이 만약 부모라면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끊임없이 책 내용을 논리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가 같이 놀자고 하면 무엇 하나라도 가르치기 위해서 '학습을 가장한 놀이'를 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는 배우면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놀면서 성장하는 존재다. 물론,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은 때가 되면 다 배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배움의 시기'를 일찍 경험한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놀이의 반란>은 "놀이는 아이의 본능이자 삶 그 자체다."라고 말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태아에게 영어 동요를 들려주면서 '영어에 익숙해지는 태교 학습'을 하는 임신부도 적지 않다. 이들이 잘못된 태교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까지 교육열이 뜨거운 것은 곧 엄마 자신의 소망을 은연중에 표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고 본다. 하여 뱃속에서 시작된 학습은 태어남과 동시에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누군가 말하기를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배울 수 있다면야 무엇인들-", 그러나 조금 빨리 안다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것이며, 세상의 다양성에 눈을 조금 빨리 뜬다고 얼마나 대단한 존재가 될 것인지부터 의문이다.

 

놀이터에서 사라진 아이들

<놀이의 반란>은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에 주목하라고 했다. 엄마에게 양육의 모든 것을 떠넘기고 뒤로 물러난 아빠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면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틀어주기에 바빴던 아빠들, 그들은 아이와 노는 법을 몰라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엄마도 '아빠 노릇'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해줘야 하는 놀이가 있고, 엄마가 해줘야 하는 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빠의 남성성과 엄마의 여성성이 고루 어우러진 놀이가 아이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또한,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저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나운서'처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말인즉, 엄마가 놀이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거나 지시 또는 충고하지 말 것이며, 아이의 기분과 행동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면 된다는 것이다. 

 

「아빠의 놀이는 다르다. 아빠는 놀이를 학습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하게 재미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등한 관계에서 놀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는 마치 친구의 관계를 맺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아빠와 친구처럼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그 감정에 맞춰서 내 감정을 조율하는 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다. 때문에 놀이에 있어서 엄마보다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아이들은 당연히 사회성이 더 크게 발달하는 것이다.」p.125

 

항상 무언가를 가르치는 부모들에게

지금 아이들은 영어 단어를 하나 더 배울 시간에 친구들과 뛰어노는 즐거움을 먼저 배워야 한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시작되는 것처럼 학원과 학원을 오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떤 희망과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늘 그래왔듯이 아이는 가만히 있는데, 부모가 주변을 의식해서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쌓이게 된다. 요즘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한창 아이들이 뛰어놀 시간임에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한 명도 없다. 간혹, 만나는 아이가 있어도 늘 그 아이만 보일 뿐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 엄마가 "요즘은 친구 사귀려고 학원 다니는 애들이 많다더라."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늘 빈둥거리면서 놀이터만 기웃거리게 만들 수도 없는 법, 그러나 생각이 이쯤되면 무언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아이마저 친구를 만나러 학원에 가버리면 그것이 진정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부모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가

<놀이의 반란>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힘들다는 것. 끝으로 이러한 고민을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결국, '아이의 관점, 속도에 맞추자. 부모로서의 욕심을 버리고 맑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이게 내가 떠올린 답이었다. 그리고 매사 '아이의 성장'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 것이며, 물 흐르듯이 가만히 바라보면서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책임감있게 하자는 것. 이게 진정 아이를 위한 최고의 교육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