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反)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의 가치관과 세상이 대립되는 순간, 사회의 부조리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좌절해야만 했던 순간이 찾아오면 말이다.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못할망정 '나 자신'이 스스로 격려하며 치켜세우면서 잘 살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를 지키며 사는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래, '나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인식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아주 몽매한 인간은 아니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쉴 법도 한데…… 억장이 무너지는 차별의 순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이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도 알고 있으면서 괜히 짜증 나고 열 받는 것. 그래서 자칫 생존권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는 '임금상승', '결사반대', '우리를 존중해달라.', '우리도 사람이다.'와 같은 팻말을 들고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심, 노사분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빈번하게 벌어진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들은 타협할 수 있을 것인가?
인권을 박탈당한 자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럼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십시일反>은 국가인권위원회와 10명의 만화가가 함께 기획·편찬한 책이다. 그들은 무엇을 기획했을까? 바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장애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교육을 아우르는 사회적 약자와 빈부격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만화를 통해 신랄한 풍자로 재구성했다. 사실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으면서도, '약해지면 안 된다.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는 이 세상과 맞설 수 없어. 강해져야 해. 그 누구도 너를 무시할 수 없도록!'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 <십시일反>은 사회적 약자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쉬이 잊어버린다. 지금 무섭고 불편한 것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버텨가는 나날이다. 눈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세상의 온갖 장애물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나에게 하루하루는 장애물 경주이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하도 계단 앞에서 머뭇거려야 하나…… 다른 사람들도 쉬지 않고 오르면 숨이 차는, 이 끝없는 계단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본문 중에서
이미 세상은 차별성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며 자신의 존재감이 마치, 생존권이라도 되는 것 마냥 '무시'하지 말라며 직접 광고하고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 와 '틀리다' 의 개념 자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중심이 되는 곳'에서 모든 사물을 인지하고 분석하기에 이른다. 외관상 드러나는 타인의 결점은 결코 치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정립한 모순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치부였노라며 인정하는 그 당사자의 가치관이 치부되는 순간이 될 뿐…… 속된 말로 '사무실에서 아침 커피를 준비하는 일을 꼭 여직원이 해야 하는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치를 보면서 망설여야만 하는 것인지', '일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어디서 임금상승이야?'라고 말한다면, '그저 한 사람을 위해서 장애인 화장실을 만든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말한다면, '딸이라고요? 의사 선생님, 아무래도 출산은 힘들 것 같네요. 저희 부부는 아들을 원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왜 죄가 되는거죠?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게 잘못인가요?' 와 같은 누군가의 하소연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누가 누구를 업신여기고 있는지 느껴질 법도 한데……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방식과 편견, 내가 중심이 아닌, '우리'가 중심이 되는 가치관으로 탈바꿈하라!
이 책을 계기로 <사이시옷>이라는 책도 읽어볼 참이다. <십시일反>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와 만화가들이 다시 한번 '차별 없는 세상 만들기'를 위한 두 번째 인권 만화책을 준비했다고 하니!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 당당하게 살겠노라 다짐했던 나 자신이 혹시나 누군가를 무시하고 업신여기진 않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나의 도덕의식이 그래도 아직 회복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고등학생인 동생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해주어야겠다.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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