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아, 아니야. 피곤할 텐데 얼른 씻고 쉬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엄마가 허둥지둥 방을 나갔다. 소희는 자신과 엄마 사이가 아주 사소한 언쟁으로도 균열을 일으키고, 관계가 무너질 만큼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식이 버릇없게 굴어도 야단칠 수 없을 만큼 얇고 약한 관계였다. 소희는 진이 빠진 몸을 침대 위에 털썩 내려놓았다. 그러곤 목을 타고 넘어오는 씁쓸함을 주스와 함께 되넘겼다.」- 본문 중에서
<소희의 방>의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소희가 세 살 되던 무렵, 아빠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귀한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주 세상에서 없어졌노라며 땅을 치고 통곡하는 소희의 할머니. 엄마는 어떻게서든 혼자 힘으로 소희를 키워보려 했으나, 시어머니는 소희의 양육권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궁합도 안 좋고, 여자치고 큰 키도 마음에 안 들고, 붙임성 없는 성격……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엄마를 구박했고, 결국 소희의 엄마는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재혼해서 자식을 낳고 살게 된다. 머지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열다섯 살이 된 소희를 다시 데려오기로 하는데…… 작은 아버지 집에 얹혀살면서 항상 떳떳하지 못했던 소희였다.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 뭣하나, 고아에다가 무료급식대상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자존감을 상실해버리고 말았는데… 이제와서 자신을 책임지겠다는 엄마, 낯선 새아빠와 동생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은 사춘기 소녀 '소희'를 너무 가혹한 현실에 집어넣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당도한 소희는 불리한 조건만 잔뜩 짊어지고 등장한다. 부모에 버림받은 시골소녀가 휘황찬란한 대도시에 제법 부와 명성을 쥐고 사는 새아빠와 친엄마를 만나게 되는 진부한 이야기,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기 위해서 비싼 브랜드제품으로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 엄마의 모습이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죗값을 치르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을까? 물론 저자의 의도는 나의 추측과 정반대일 것이다. 어른들의 무책임이 한창 성장할 시기의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숱한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성장하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일종의 '자존감 형성'이나 '자아정체감 형성'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까? 왜 항상 청소년문학은 시발점이 어른들의 비도덕적인 행위와 판단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불행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레퍼토리가 중점이 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뭘 어쨌는데요? 엄마가 이런 집에서 호강하며 살고 있을 때 난 시골 구석에서, 또 작은집에서 부모 없는 고아로 찌그러져 살았는데요. 다른 애들이 뛰어놀고 공부할 때 할머니 병간호하고, 집안일하고, 미용실에서 손님 머리 감기면서 살았다구요. 그러면서도 한 번도, 단 한 번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리워해 본 적도 없을 만큼 엄마는 나한테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내가 엄마의 족쇄였다구요?"」- 본문 중에서
<소희의 방>은 책 제목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면 '자신만의 방'을 가지지 못했던 소희의 내적 심리변화를 투영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거기에는 엄마의 재혼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시작된 가족의 화합, 그 중심에는 소희 자신이 새 식구로 등장하기에, 조금이나마 '자기중심성'에 의한 해석이 개입된 것은 아니었을까. 왜 저자는 '소희의 방'을 지목했을까? 우리의 방이 아닌 소희의 방이란 자체가 독립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즉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라는 자신을 향한 비난을 감추기 위해 마음을 굳게 닫고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야했던 주인공 소희의 억눌린 자존감을 대변하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신을 '엄친딸', '부잣집 딸'이라고 부러워한다. 거짓된 치장으로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춰야만 하는 현실이 못마땅했던 소희였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소희의, 소희만의 방'이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싶었던 주인공 소희의 억눌린 감정이 폐쇄된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저자는 '방'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 더 확대하여 해석하자면, 엄마와의 관계가 말끔하게 해결되질 않아서 고통스러운 소희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소희의 방> 자체는 흥미롭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등장인물의 역할과 성격이 시기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가족의 화목과 안정감을 이룩하려는 전개방식이 진부하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낀 점은 다르겠으나, 나는 진정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대한 문학이라면 적어도 그 문학작품을 읽을 대상이 '청소년'이라는 전제하에 가족해체의 씁쓸함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청소년의 입장부터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소희의 방>은 어른 중심, 어른을 위한 책이라고 보여진다. 물질만능주의로 자식의 상처를 감싸안으려는 부모의 무책임함을 고발하는 측면도 있으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씌여진 내용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인공 소희의 내적불안감을 깊이 있게 드러내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차라리 1인칭 시점으로 '소희'를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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