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위한 변명
「인간은 절대적인 모순율 속에 살고 있다. 즉 오늘 이 시간에 서울의 어느 집에 있으면, 같은 시각 프랑스의 파리에 있을 순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적인 생활, 아니 독서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 절대적인 모순율을 넘어설 수가 있다. 발자크와 더불어 19세기의 파리를 산책할 수가 있고, 글뤽스만과 더불어 바스티유의 광장에서 서성거릴 수가 있고, 뮈세와 더불어 센강의 관광선을 타고 랭보의 시를 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병주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일본 메이지 대학 문예과와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수학,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지리산》, 《그해 5월》,《관부연락선》,《소설 남로당》등이 있다. 2008년 4월 24일에는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이병주 문학관'을 설립되었다. 현재 나는 하동에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병주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문학수도 하동, 더 나아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거장이라 불리는 '이병주'의 에세이 <문학을 위한 변명>을 먼저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이 책을 계기로 '나 자신이 그의 작품에 깊이 파고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의 가장 은밀한 곳에 감춰진 문학관을 먼저 알고 싶었는지도……
이 책은 크게 제1부 자전적 에세이 9편과 제2부 이병주 문학론 9편 총 1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저자의 지적 성숙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자기성찰을 다룬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한국 현대문학에 있어 80여 권의 작품을 남긴 작가 이병주가 존재할 수 있었던 사적이고도 공개적인 작가로서의 자아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자전적 에세이에 실린 '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인간의 지적 수준의 적나라한 실체가 어디서 시작되고 완성되는지를 알려준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지적인 생활이란 언제나 최고를 선택하는 생활이다. 사상의 최고, 행동의 최고, 취미의 최고, 불행의 시궁창 속에 빠져 있어도 인간의 위신을 지킬 줄 알고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착한 것을 지향할 줄 아는 생활을 뜻한다. 비록 철인이 될 수는 없어도 철학의 은총 속에 살고, 비록 예술가가 될 수는 없어도 예술의 향기 속에 살 수 있는 비리秘理가 지적 생활엔 있는 것이다."라는 관점을 알게 된다. 문학은 지적인 대해大海로부터 시작된 강줄기와 같은 것인가? 책의 출발 신호는 '지적 생활의 탐구'로부터 울리기 시작하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사상은 갖되, 스스로 그 사상에 얽매이지 않는 융통무애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행동하자는 당부입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합시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그것을 사용할 일이지, 그렇지 않을 때는 너와 나 모두가 섬세하고 유연한 인간으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상이라도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어야지, 딱딱하게 굳어져 있어서는 인생에 있어 소탐대실의 우를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우연한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병주는 솔제니친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절대적인 모순율에 속한 이데올로기의 난폭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인간의 신념을 복합적으로 자극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관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자신의 사상을 고백하고 있었다. 책의 중간마다 마르크시즘의 정당한 대가와 보수의 관계가 지향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인간 사상에 근접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에 대하여 문학인으로서의 사상에 빗대어 재차 강조하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그는 "문학적 인식은 기록과 묘사를 통한 인식이다. 사랑에 의한 인식, 드라마틱한 인식 등은 정도의 광협廣狹, 심천은 있을망정 문학인 이외의 사람들도 하고 있고 할 수도 있는 인식이다. 그런데 문학인과 비문학인을 결정짓는 곳이 바로 이 기록과 묘사에 의한 인식의 장소이다."라고 말한다. 문학적 인식이라, 이제 나는 이병주의 첫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문학을 위한 변명>은 그의 작품을 가까이 접해보고 나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지금과는 다른 감상글이 쓰이리라 굳게 믿는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문학관을 지금부터 탐방하자. 다음 독서계획표의 일 순위는 <소설·알렉산드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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