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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 아이들에게 필요한 동화는 무엇인가? 박완서의 동화를 읽어보라.

글쓰는서령 2011. 8. 13. 13:10

 


자전거 도둑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다림 | 1999-12-20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소설가 박완서의 단편동화 모음집. 전기 용품 도매상의 꼬마 점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는 거의 모든 내용이 '삶의 교훈과 지혜'를 담고 있었다. '흥부와 놀부', '혹부리 영감', '심청전', '콩쥐팥쥐', '요술 항아리', '금도끼 은도끼' 등 대부분 인간의 시기와 질투심 그리고 헛된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과 하나 되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조상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전래동화의 흐름은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에 반해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창작동화는 기존의 '전래동화'를 주춧돌로 삼되,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전개방식을 보이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은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에는 총 6편의 단편동화가 실려 있다. 비단 이 책을 읽을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무방 할만큼 동화의 깊이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살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존재의 소중함, 그 존재란 가족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세상은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안에서 가진 자는 끊임없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움직인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복잡한 삶에 치여서 사는 어른들, 그 모습을 보고 배울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너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구나?" 나는 반가워서 소리 질렀습니다. "아니야, 우리 집은 바로 조오기야." 반장은 호박밭 머리에 조그만 집을 가리켰습니다. 그 아이는 무허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무허가 동네는 파리나 모기나 그 밖에 나쁜 것들만 키워 내는 줄 알았더니, 그 아이처럼 건강하고 마음씨가 넓고 공부 잘 하는 아이도 키워 내고 있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책에 실린 '할머니는 우리 편'이라는 동화 일부분이다. 소년의 집은 이사를 자주 다닌다. 소년의 부모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계속 집을 옮기는 것이다. 이는 자칫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리게 하는데, 맹자의 어머니와는 조금 대조되는 느낌이다. 소년의 엄마는 아이가 혼자 쓰는 공부방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이사를 결심하는데… 소년의 할머니는 정말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야 할 부분을 잃어버린 소년의 부모를 책망이라도 하는 듯, 따끔한 충고를 내리기에 이른다. 이 동화는 부모의 과한 욕심이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와 비슷한 동화가 한 편 더 있다.

 

'옥상의 민들레 꽃'이라는 동화인데, 여기서는 궁전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심리갈등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집값, 땅값 올리기' 열풍에 휩싸인 지나친 욕심을 보여주는데, 호화로운 궁전 아파트에 연이어 할머니 두 분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파트 주민들은 일제히 집값보호작전에 돌입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여기서 '모든 게 갖추어진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왜 자살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소년이 등장하는 것. 사람들은 쇠창살을 설치하면 된다고 의견을 모으지만, 소년은 알고 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물질만능주의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 작은 민들레 꽃이라는 것을…… 자연을 등한시한 채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도시 아이들은 아마 토끼풀하고 괭이밥하고도 헛갈리는 애 천질걸. 환뫼야, 우리가 문명의 이기에 대해 모르는 건 무식한 거고, 도시 아이들이 밤나무와 떡갈나무와 참나무와 나도밤나무와 참피나무와 물푸레나무와 피나무와 가시나무와 (…)에 대해 모르는 건 유식하다는 생각일랑 제발 버려야 한다. 그건 똑같이 무식한 거니까, 너희가 특별히 주눅들 필요는 없지 않겠니. 그러나 너희들은 싫건 좋건 앞으로 문명과 만나고 길들여질 테지만, 도시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만나 가슴을 울렁거릴 기회는 좀처럼 없을걸. 그런 경험을 놓치고 어른이 되어버리면 너무 불쌍하지 않니."」- 본문 중에서

 

 

 

그래도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고 치열하게 싸워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주머니,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노라며 자녀들에게 유독 이렇게 강조하는 부모가 있을 법도 하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한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 요즘 세상은 돈 많은 사람이 최고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장이 무한한 법이다. 흔히 '도시에 사는 아이'와 '시골에 사는 아이'가 누리는 교육의 질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그건 사는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조건이라서 그 무엇을 원망해서도 안 될 것인데, 그 '어쩔 수 없는 조건'이 성립되는 원인제공을 누가 하느냐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의 책임인가? 출세하여 부와 명성을 누리려는 어른들의 욕심인가?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신,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세상이 이대로 흘러가다간 '머리 좋은 아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도 '심성 좋은 아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지경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결코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삶을 향한 경각심'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먼저 읽어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부모가 먼저 책이 시사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녀에게 다시 들려줌으로써, 작은 실천을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동화를 그저 동화로서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교훈을 통해서 삶의 습관 중에서 고쳐야 할 부분은 과감히 고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말 보배로운 동화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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