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독서에 대하여
요즘 나는 '책 읽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독서를 더러 단순히 책 읽는 행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생각은 계속 해왔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일어난 내·외적인 변화, 삶의 품격과 세련미가 한층 깊어지고 풍부해졌음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확장된 사고의 기능이 더욱 고차원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가령, 어떤 현상에 대한 분석을 시작할 때가 그러하다. 이때의 나는 연상, 응용, 창작, 상상, 결합, 분해, 교정의 사고 단계를 거치곤 한다. 분석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추론 과정의 일부라면 말이다. 타당한 근거와 사실적 정보 그리고 실제 경험이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헌데, 이러한 기능을 고루 활용하려면 먼저 '사고의 다각화'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에 나는 책 읽는 행위야말로 가장 탁월한 준비 과정이라고 본다. 사고의 다양성을 위한 최종 관문이 아닌 준비단계의 중심에 '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모든 아이는 학교 칠판에 처음으로 철자를 그려 넣고, 처음으로 읽기를 시도하면서 인위적이고 극히 복잡한 어떤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세계의 법칙과 놀이 규칙을 매우 잘 알고 완전히 익히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과 글,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조그만 공간, 즉 집 한 채나 방 한 칸에 인간정신의 역사를 집어넣어 소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책을 선택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p.255
헤르만 헤세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욕이며, 완전한 판단이 아닌 수용력, 솔직함, 공평무사함이다."라고 했다. 독서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마찬가지다. 앎에 대한 갈망이나 교양의 충족을 위해 독서하는 것이 아닌 '불완전한 존재의 껍질'을 조금씩 벗겨내어 인간으로서의 감각을 키우기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독서는 낯선 이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이요, 이해와 존중의 단계를 지나 우리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책에 대한 태도가 언제나 호의적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의심하고 또 분석하려는 의욕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애써 기대하거나 방관하지 말아야 하며, 헤세의 말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글 그리고 글쓰기
독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새로운 준비과정에 몰입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비단 독서하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꾸준한 성찰과 기록이 동반되어야 한다. <헤세의 문장론>은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생각이 뚜렷이 기록되어있다. 그는 독일 문학의 현재와 미래, 독자로서의 역할과 관점이 지닌 다양성, 글쓰기에 임하는 혹, 책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서가에 꼿힌 책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방법과 출판업계의 오늘과 미래, 저자로서의 자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내비쳤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려는 독서의 가치를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상업성에 물든 출판업계의 현실과 이에 크게 게의치않고 개인의 기호와 무관한 베스트셀러를 선호하는 독자의 취향까지- 헤르만 헤세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인간만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손 없이도, 펜이나 붓, 종이나 양피지 없이도 글이 쓰일 수 있다. 바람과 바다, 강과 시냇물도 글을 쓴다. 동물들도 글을 쓰며, 어디선가 대지가 이맛살을 찌푸려 강물의 길을 막고, 산이나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때는 대지도 글을 쓴다. 하지만 겉보기에 맹목적인 힘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글로, 그러므로 객관화된 정신으로 바라보려 하고, 또 그럴 능력이 있는 것은 인간정신뿐이다.」p.322
인간정신을 바로 세우는 힘, 바로 꾸준한 성찰과 정독 그리고 기록의 연속이다
언젠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쥐도새도 모르게 쏜살같이 글을 써내려간 적이 있었다. 이러한 글쓰기를 무려 260일 동안 매일 실천하여 250편이 넘는 글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하나의 단어를 떠올려서 그에 대한 단상을 기록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떻게 그 많은 글을 써냈는지 의문이다. 그때의 나는 매 순간 '나의 삶'에 몰입하는 기쁨에 빠져있었다. 하여 모든 순간이 경이롭고 소중한 것인지라 글을 쓰고 또 썼다.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높은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가장 낮은 곳에 고이기까지- 아니, 내가 돛단배 한 척을 타고 물살을 거스르려 안간힘을 쓰듯, 책으로부터 얻는 것과 내가 애써 새롭게 구하려는 것에 대한 '독서 욕구'가 차고 넘치는 수준에 이르렀었다. 독서에 대한 애착이 최고조를 달리던 시절, 나의 정신 세계는 내적 갈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외부의 충격에 상처받아 좌절하고, 다시 내부의 휘황찬란한 지식세계에서 희망을 찾아내곤 했다. 모든 것이 책과 글쓰기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있어서 당신의 감각을 따르되, 어느 하나라도 당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형화된 글과 책일지라도 애써 호의적으로 인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개성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 고로 획일화된 정서와 문자(文字)에 매혹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글과 책이 존재한다. 이미 찾았거나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해도 상관없다. 삶에 대한 탐색은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하며, 인간정신의 구심이 되는 '독서' 역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시도하는 독자로서의 역할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진정성을 지닌 독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읽은 헤르만 헤세의 문장론은 그 뜻이 심오하여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받아들이는 몫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것이니, 시간을 내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책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여기에 모두 옮기지 못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하나 제대로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인간정신의 완전성은 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현인과 시인이 이미 여러 번 그런 말을 했다. 그때마다 약간 달라서, 매번 약간 더 명랑하거나 더 비탄에 젖을 때도, 약간 더 쓰디쓰거나 더 달콤할 때도 있었다. 어휘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고, 복문을 다르게 배열해 구성하거나 배치할 수도 있다. 팔레트 위의 색상을 다르게 배열해 사용할 수 있고, 딱딱한 연필을 쓰거나 부드러운 연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옛날 것, 가끔 말하고 시도한 것, 영원한 것이다. 모든 쇄신은 흥미롭다. 언어와 예술 속의 모든 혁신은 흥미진진하고, 예술가들의 온갖 유희는 매혹적이다. 이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할 가치가 있으나 결코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하나로 남아 있다.」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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