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글쓰는서령 2014. 7. 25. 22:45

 


책인시공

저자
정수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3-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유하는 산책자 정수복, 독서가들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비밀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책,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자

늘 그랬던 것 같다. 잡념이 시작되려고 하면 무작정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눈으로 글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온갖 잡념이 휘몰아치기 일쑤, 독서가 오히려 잡념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주는 꼴이 된 것이다. 심기가 매우 불편하여 심보마저 고약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추측과 의심이 시작되면 마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듯, 잡념의 거미줄이 확장 속도를 미친 듯이 높여만 간다. 그것이 바로 잡념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이의 모습이다. 몸에 매달린 것을 죄다 집어던지고 방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누워본다. 눈을 감고 지금 이 꼴을 내려다보고자 다짐한다. 그러나 이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이른바 '독서 수행'이라도 해서 번잡한 마음을 다스려보자는 것이다. 나에게 책과 독서는 그런 의미다. 많이 알려고, 부자가 되려고 책을 읽지 않는다. 어제는 웃어도 오늘은 못난 얼굴이 되어버리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서,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 겸손함 그리고 삶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책 읽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그 이유도 모습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른함을 물리치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식을 찾기 위해서, 사회의 부조리함을 파헤치기 위해서, 독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들은 개적인 시간이 많아서 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어떻게서든 '책'을 읽을, 읽는 사람들이다. 책 읽는 공간 역시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누워서, 앉아서, 서서, 엎드려서, 뛰면서, 춤추면서- 그 어떤 행위를 통해서라도 책 읽기는 가능하다. 책 읽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그냥 책이 생각나면 그 시간에 책을 펼치는 것 뿐이다. 말인즉,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잡념을 떨쳐버리려고 책을 읽는다 했는데, 것도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늘상 책 읽는 행위가 내 몸에 깊숙이 베여있는데, 그럼 잡념 없이 즐거우면 책을 안 읽겠다는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건, 독서의 중독이자 일상화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책 읽는 사람들은 그런지도 모른다. 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냥' 좋은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인시공>에서도 그 느낌은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책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저자는 파리에서의 생활 경험담을 통해 책과 함께하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책인시공(冊人時空)'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독서에 대한 성찰적 기록과 단상을 가만히 읽다 보니, 나의 몸과 마음이 이 한 권의 책에 온전히 흡수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그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으며, 따분할 정도로 색깔이 분명하지도 않다. 그저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하여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프랑스 속담 가운데 "각각의 나이에는 그 나이에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일생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나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청춘의 독서와 장년의 독서, 중년의 독서와 노년의 독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청춘의 시기에는 감성을 일깨우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책이 필요하고, 장년의 시기에는 세상을 넓게 보게 하는 책과 직업활동을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점차 위로와 위안을 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마음을 다독거리고 보살펴주는 책을 읽게 된다. 그러다 노년이 되면 인생과 세상 전체를 관조할 수 있게 하는 지혜의 책을 가까이하게 되는 것이다.」p. 91

 

정신력 강화 그리고 삶에 대한 지혜를 키우는 운동, 독서를 말하다

독서는 그렇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생각하기'와 '사색하기'에 대한 영양분을 무한정 공급해준다. 그러나 공급은 해주되, 그것을 필요에 따라 섭취하고 흡수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독서는 인간의 관점을 수시로 자극하고 변화를 촉진한다. 움직이는 현상으로 습득한 지식을 다시 가지런히 문자화된 지식에 빗대어보게끔 유도한다. 지금 우리가 가진 관점과 지식은 절대로 온전하지 않으며,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 흡수되려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지시나 공격으로 시작되지 않은, 온전히 나의 의지력으로 만드는 '독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글쎄, <책인시공>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유하는 힘의 생산자를 철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음에 내심 놀라웠다. 말인즉, 책과 독서의 가치를 일목요연히 강조하는 것이 아닌 '책인시공(冊人時空)'의 배경 속으로 초대하고 있음이 곧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발견하여 느끼게끔 했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책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

의욕과 열정이 충만한 상태로 도서관을 찾아간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때의 내가 잠시 빌려온 책이 무려 아홉 권이다. 지금 절반은 정독, 나머지는 스르륵 넘겨본 상태다. 온종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독서 시간을 만들기가 참 어렵기만 하다.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간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사와 육아를 내팽개치고 책만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잡념 떨치기는 우스갯소리요, 내가 살아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의 힘'을 쉽게 놓아줄 수가 없는 것이다. 식탁 앞에 서서 책을 읽고, 놀이터에서 아이와 뛰어놀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아이가 낮잠을 자면 재빨리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한다. 30분 일찍 일어나고 30분 늦게 자는- 그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다. 외출하는 날이면 가방에 책 한 권 넣고, 잠시 시간이 남으면 곧바로 책을 꺼내든다. 누군가 묻는다.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책을 읽느냐고. 글쎄다. 딱히 이유랄 것도 없지만, 딱 하나를 꼽으라면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오늘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천천히 둘러본 소감은 여기까지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진 '도서반납일'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글을 마무리하고 책이나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