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과 박자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
'건반 위의 진화론자'라 불리는 김대진, 그는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로 끝없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는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여 손열음, 김선욱 등 우수한 제자들을 배출한 명교수이기도 하다. 또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클리브랜드, 클라라 하스킬, 파다레프스키, 베토벤, 리즈국제콩쿠르 등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2014년 한국인 최초로 루빈스타인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음악계의 주류로 활약하는 그가 '음악적 감수성으로 바라본 교육' 즉, 유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훌륭한 음악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점에 대하여 낱낱이 털어놓고 있다. 특히, '교육'이라는 것이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로 맺고 끊어지는 것이 아닌 각각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생각을 밝히기에 앞서서 그는 '아이들의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아이가 클래식을 친근하게 느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악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악기 배우기는 음악과 친구가 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어린 시절 악기를 배우면서 얻게 되는 것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인내심과 집중력, 그리고 한 곡, 한 곡 연주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기쁨과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를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악기를 배우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삶과 노력을 살필 수 있는 배려심까지 얻게 됩니다. 특히 학창 시절의 오케스트라 활동은 사회성과 협동심, 그리고 풍부한 정서와 부드럽고 안정된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p.54
피아니스트의 시선으로 바라본 '참된 교육이란 무엇인가'
<음악이 아이에게 말을 걸다>는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바라본 교육의 현실과 미래를 말하고 있다. 하여 이 부분이 책의 독특한 관점과 방식을 암시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비단 교육이라는 것이 특정 분야마다 그 방법을 달리해야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떤 과목의 특성을 이해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면, 이에 조금 덧붙여서 과목의 특성을 습득하되 자신의 개성과 창조성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창의적 교육'으로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보면 될 것 같다. 말인즉, 음악은 머리가 아닌 본능적 감각에 따른 가슴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콩쿠르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지켜본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연주에는 '개성'과 '자신감'이 없음을 종종 목격한다고 했다. 외국의 아이들은 연주 실력이 미흡하더라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신이 배운 것'에 기초하여 그 이상의 창작열을 피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연주실력으로 무장된 아이들이 아닌, 언제 어디서라도 열심히 하고자하는 열정이 충만한 아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음이 저자의 뇌리에 꼿힌 것이다.
「요즘 예술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재능이 많은 아이들 역시 서로 비슷하게 연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주를 하는데 그 안에 자기 자신이 없다는 것은 테크닉의 부족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비슷한 얼굴을 가진 성인들만을 자꾸 키워내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를 놓고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켜보면 모두 비슷한 대답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제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자기 자신을 찾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이제 예술학교의 교육은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갖게 해주고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해줄 것인가?'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음악가들은 지구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이어야 합니다.」p.140
나란히 걸어가되, 걸음걸이마저 똑같아질 필요가 있을까
어떤 아이는 빨간 운동화를 신고 어떤 아이는 파란 운동화를 신고 걸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생김새와 키, 몸무게가 제각각 다르듯 우리는 애써 서로를 닮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하는 만큼-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기본만 하자."라고 쉽게 말하는데, '기본+개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학교교육과 사교육으로 힘겨워 하는 아이들은 값비싼 옷과 두둑한 용돈이 아닌, 가족이 한데 모여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삶에 대한 계획을 멋지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열정없는 예술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어디 예술에만 국한된 것일까.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산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목숨이 붙어있는 한, 누구나 어떻게서든 살아간다. 그러나 삶의 방향이나 모습은 '열정'의 유무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배운다는 것, 가르친다는 것도 그렇다. 열정이 생략된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으랴. 끝으로 저자는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 브람스, 슈만,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곡을 추천해주었다. 또한, 음악과 삶이 더욱 친밀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양한 음악회를 소개해주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크고작은 음악회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니, 가족과 함께 꼭 찾아가보기를 바란다고. 늘 음악으로 아침을 열고, 음악과 함께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참으로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삶에 음악이 사라져버린다면, 그 무미건조함으로 무엇으로 견딜 수 있을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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