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듣거나 볼 수 있으나,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형식으로 갖추어진 틀 속에서 과연 인간의 창조력이 탄생할 수 있을까.
말을 잘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형식만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면
글을 잘 쓰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형식적인 글쓰기에 매진한다면
생각을 잘하겠노라고 다짐한 사람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행위가 추구해야 할 본질을 망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본래 존재하던 것을 토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하여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처지라서, 매 순간 나의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한다.
창조적이지 않은 글, 어디서 본 듯한 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
그들(글)은 이미 누군가의 몸이 낳은 글이니,
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빌려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광대, 거지, 수행자, 서민, 대왕, 악마에 이르기까지
나의 정신적 위치와 역할을 수없이 바꾸고 또 바꾼다.
하여 그 누구도 나의 실체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의 의미를 탐구하여 창조하는 과정의 일부,
기술의 정석(定石)이 파괴되는 찰나적 순간이기도 하다.
-書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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