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생각하는 방

산과 나무의 신념

글쓰는서령 2013. 1. 1. 01:43

 

 

 

 

 

그대가 산다는 것에 지쳐 나를 찾을 때면

나는 이미 뿌리의 절반을 도려내어- 지상의 생명에 뿌린 지 오래다.

그대의 얼굴에 잔주름이 생겨 삶의 지혜가 생길 때면

나는 이미 내 몸의 절반을 도려내어- 만물이 본받을 연륜을 드러냈다.

 

산 중턱에 홀로 우뚝 솟아오른 나를 보라.

그대가 삶에 임하는 신념이 나와 같은 것인가.

 

나는 산을 이루는 나무들 사이에 뿌리를 내린

이름없는 나무,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내가 아니어도 나무는 본래 나무가 있어야 할 곳에 수없이 존재하므로.

 

어떤 이는 벼락을 맞아 반으로 쪼개졌고

어떤 이는 불길에 휩싸여 새카만 재가 되었으며,

어떤 이는 톱날에 잘리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탐스러운 꽃과 열매를 주렁주렁 낳았고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포만감을 선사하였다.

그는 인고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수많은 나무 중의 한 그루일 뿐이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으나,

그는 그저 제 소신대로 뿌리를 지키고, 그것을 키워나갔다.

 

나무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자신에게 남겨진, 주어진 모든 것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어떤 이의 운명을 되풀이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그러한 모든 운명에 답하듯,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멈춰서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길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다.

나와 당신의 몸집보다 큰 바위가 길을 막고 있는데-

바위를 번쩍 들어 올려- 곧바로 치워버리는 사람도 있고,

바위를 옆으로 밀어내어- 자신이 지나갈 공간을 만드는 사람,

바위를 조금씩 깎아내어- 자신이 지나갈 길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생각해보자.

삶을 조금씩 손질하여 다듬어, 어떤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어찌 삶을 거뜬히 들어올려- 단숨에 해치워버리는 것에 치중하는가."

 

나는 나를 조금씩 손질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깊은 산 속에 감추어진 존재이나, 절대로 잊혀진 존재는 아니다.

세상이 나를 모르는 순간마저도 나는 나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비단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뽑아라면,

나는 내가 태어난 산의 신념이 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書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