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바람난 여자
「나는 잠들기 전에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한다. 새벽 네 시에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더 빨리 피곤해지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기진맥질해질 때까지 한쪽 눈으로만 읽는다. 장, 문단 혹은 줄 끝에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서 한 문장을 한참 읽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독서를 멈춘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본문 중에서
아니 프랑수아는 한 권의 책이다. 그녀의 삶은 책이 되는 과정에 있었으며, 마침내 책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장장 30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오로지 책만 읽어온 베테랑 편집자다. 잠시나마 그녀의 직업이 부러워서 입이 쩍 벌어졌다. 책을 읽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몸소 습득했을 다양한 지식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과 바람난 여자>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자신의 감정과 책을 둘러싼 모든 요소에 대한 재발견 또는 해석론이 담겨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급격히 팽창시키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책이 아닐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임과 동시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동물인데, 그 중심에는 단연 책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눈과 귀로 세상을 읽는 시대가 되었건만, 그래도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자를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말과 글이 합성된 것이기 때문에 둘 중의 하나라도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면 원활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꾸준한 독서를 통해서 기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책 애호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보는 듯하다. 그와 동시에 독서가 인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나에게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도서전이다. 죽었거나 살아 있는 그 수천 명의 작가들, 내가 읽지 않은 그 수백만 권의 저작들. 그것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나는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나는 곧 도매 푸줏간이나 대형 양계장에서 길을 잃은 채식주의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식욕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없이 널려있는 그 책─음식물들이 구역질을 일으킨다. 나는 매년 도서전에서 나올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본문 중에서
가끔 책 구경을 하러 대형서점이나 헌책방을 찾아간다. 주머니는 텅 비었고 맨손으로 서점을 나오지만, 내 마음은 세상의 그 어떤 진귀한 보석보다 값진 선물을 한 아름 품고 있다. 서점에 들어서면 나 자신이 놀랄 만큼 눈동자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삽시간에 서점의 내부를 쭉 둘러보면서 분야별로 정리된 코너에 눈도장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차례대로 코너를 돌면서 진열된 책을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밑에서 위로 시선을 옮기면서 읽기 시작한다. 눈동자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진열된 책을 마음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시선이 꽂힌 책 제목을 휴대폰 메모장이나 수첩에 옮겨 적는 것… 때로 책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내가 책을 통해 배운 것, 책은 나에게 무엇인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이다. 그에 반해 <책과 바람난 여자>는 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소소한 고찰을 고백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녀가 일종의 책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결핍증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려 30년 동안 책을 읽고 편집하는 일을 했다고 하니… 책만 보면 구역질을 날만도 하며, 책 자체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만의 사상으로 재해석할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그런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이로써 한 권의 책은 인간의 사상과 가치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야 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고도화시킨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11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가오는 12월에도 풍성한 책 꾸러미속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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