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그 녀석 어째서 이렇게 사나운 짓을 하는 걸까,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철사줄이 놈의 등을 할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 등의 상처보다 심하지는 않을 텐데. 놈이 아무리 크고 힘이 넘치더라도 이 배를 언제까지나 끌고 다닐 수는 없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이제 다 했다. 염려할 필요가 없어. 예비 줄도 충분히 있고, 이만하면 안심해도 돼. "이놈아." 노인은 크게, 그러나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널 쫓아가겠다."」- 본문 중에서
부유인생, 비록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오늘만큼만 아니, 내일까지만이라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게 살다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이 세워놓은 울타리에 의지하면서 나만의 존재를 완성하던 지난날의 모습이 뭉게구름처럼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 내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어떤 인상을 남겼던가. 나는 나약한 노인이 부질없는 사냥에 나섰다고 생각했다. 비장한 각오로 무장한 노인이 이내 큰 물고기를 잡게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앙상한 뼈만 자신의 몫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 작품에 숨겨진 깊은 뜻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한번 더 읽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헤밍웨이가 심어놓은 인생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이제 나는 <노인과 바다>를 두고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일들이 다 꿈이라면 좋겠다. 차라리 고기를 잡지 말걸 그랬어.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구나, 고기야. 애당초 너를 잡은 게 잘못이었다." 노인은 말을 멈추었다. 그는 더 이상 고기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피가 깨끗하게 씻겨 거울의 뒷면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줄 무늬는 아직도 선명하게 보였다. "너무 멀리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노인은 고기에게 말했다. "내게나 네게나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어. 미안." 그는 중얼거렸다.」- 본문 중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던 노인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갈망하던 희망의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잡았으나, 그 존재로 하여금 자신이 도리어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수면 위로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물고기와의 끈질긴 사투를 벌이고… 그러나 녀석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껏 이토록 힘센 놈은 만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삶에서 엄청난 강적을 만나기라도 한것 마냥… 오직 녀석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모색하고 도전한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 희망… 그러나 행복이 결실을 맺어갈 무렵에 상어가 등장하여 노인의 물고기를 습격한다. 살점을 뜯어가는 상어를 향해 거침없이 칼을 내리찍는 노인의 모습은 또 무엇인가?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 자신의 몫을 빼앗으려는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노인과 바다>가 보여주는 찬란한 희망이라는 존재란……
「"이거나 처먹어라 갈라노 놈아, 그리고 사람을 죽인 꿈이나 꾸라구." 노인은 드디오 참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는 배 뒤쪽으로 돌아가 부러진 키 손잡이 끝을 킷대 구멍에 밀어 넣었다. 그런대로 방향만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부대를 어깨에 걸치고 배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제 배는 가볍게 물위를 미끄러져 갔다. 노인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다 꿈처럼 지나갔다. 이제 남은 일은 되도록 배를 요령있게 몰아 빨리 항구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나는 하루살이의 삶일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멋지게 살고 싶다.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부질없는 것으로 남겨질지라도 나 자신이 그 가치를 알아주고 아낌없이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있다면… 그 무엇이 두렵고 망설여지겠는가. 노인의 자존감을 위풍당당하게 빛내주었던 고기는 희망 그 이상이었다. 책에서 노인은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라고 말했다. 일찍이 고기를 포기해버렸다면, 노인은 더이상 바다 한 가운데에 존재할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수면 위로 얼핏 드러나는 고기의 모습을 보면서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나를 살리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죽이기도 한다.'라고 말하던 노인이었다. 나를 살림과 동시에 죽이는 것… 그것은 내가 가슴 깊숙이 새겨놓은 삶의 지표, 나아길 길, 나의 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헤밍웨이의 노인처럼 배를 타고 천천히 나아간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하여 우리는 나아가는가? 질풍노도의 시기에 갇혀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나에게 노인과 바다가 보여준 경이로운 삶의 진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책 <노인과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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