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 : 어느 노 화가의 하루
지은이 : 피에르 보스트
출판사 : 여백
인생의 무수한 나날을 하나씩 나누어 하루라는 개념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우리.
크든 작든 하루 속에는 저마다 굴곡진 삶의 보따리가 알알이 채워지고 있다.
하루가 원망스러운 사람도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루가 그리운 사람도 하루가 아쉬운 사람도 있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그래서 내일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의 문턱을 향하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했던가?
많이 살았고 적게 살았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마음껏 만끽하며 되돌아볼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생기는 노년의 삶.
평생을 그림이 되어 살아온 어느 노 화가의 노년기를 담은 <어느 노 화가의 하루>
이 책은 일흔여섯이란 삶의 이름표를 지니고 살아가는 노 화가 라드미랄 씨의 하루를 보여준다.
늙음을 거부하는 것인가, 늙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인가,
라드미랄 씨는 자신의 늙음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정서적 혼란기를 겪고 있는 듯하다.
「라드미랄 씨는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p.18
매주 일요일이면 자신을 찾아오는 아들 부부와 어여쁜 손자를 기다리는
라드미랄 씨!
하지만, 그의 아들 공자그와 며느리 마리-테레즈를 향한 부모로서의 그의 탄식과
자식을 향한 애처로움이 뒤섞이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향한 자식의 모든 말과 행동 심지어 표정까지 예의주시하며,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으려 애써 부모의 강인함을 보여주려 하는 노 화가의 모습과
아버지의 그런 속내를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다가서는 아들 공자그의 내적인 갈등은
이 시대의 모든 부모와 자식 간의 현실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자신보다 작고, 등이 굽은 아버지를 곁눈으로 슬며시 바라보았다.
흰 머리가 화관처럼 동그랗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팔과 팔이 맞닿은 곳으로부터 아버지의 강단이 느껴졌으며,
축축하고 쾌쾌한 땀의 열기 또한 겨드랑이로부터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p.63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딸 이렌느와 살았던 라드미랄 씨
딸 이렌느는 언제까지 아버지와 단둘이 살 수 없음에 집을 떠나 독립을 하고….
자주 찾아오던 자식들의 왕래가 뜸해지는 것에 설움마저 느끼기도 한다.
<어느 노 화가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다.
노년의 삶에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 그리고 자식들을 향한 부모로서의 사랑,
가족의 의미에 이르기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뉘우치게 한다.
등장인물이 지닌 성격과 역할, 감정 그 모든 것을 다양하게 느껴봄으로써, 한 사람의 삶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애잔함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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