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부모 입장에서 바라본 아이는 그야말로 백지 상태에 가까웠다. 잠재된 능력은 많으나, 아직 표출되지 않은 깨끗한 모습 그 자체였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산과 바다처럼, 위대한 존재로 비춰질 것이 분명했다. 아이는 부모가 제공하는 음식, 옷, 교육,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그 모든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부모의 표정이나 말투 또는 행동을 관찰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따금 부모의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아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이 가정의 땅에 일관성없는 양육방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신들의 애매모호함이 장차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누군가 권해준 양육법을 따라 했을 뿐인데, 다른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나의 아이는 나날이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문득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껏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나.', '티 없이 맑은 아이에게 나의 신념을 덧칠하기에 바빴구나.'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대물림되는 '양육의 현실'일까. 아니, 부모는 도대체 누구이며, 부모는 '왜 부모가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시도해야 되지 않을까.
동양고전에서 깨닫는 참된 부모 노릇이란
부모라면 자식이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 제 앞길을 부지런히 개척하기를 바랄 것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라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생계의 위협이 발생하더라도 물불 안 가리고 더 나은 조건과 혜택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가장한 '실속있는 조건과 정보'를 주입하고 있음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녀교육은 즉,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다. 자식의 머리부터 발끝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나아가 지식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부모는 그저 자식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고루 갖추도록 도와주면 될 것이다. <부모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동양고전에서 찾아냈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는 아이들과 '고전 읽기'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자녀교육의 지혜'가 고전에 담겨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부모 노릇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고전을 통한 삶의 근본과 부모로서의 자세를 발견해볼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몸을 닦고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구절로, 선비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알려 줍니다.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에야 가정을 돌볼 수 있고, 그 후에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일은 가정을 바로 세우고 가지런히 하는 일, 즉 '제가(齊家)'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교육이란 자녀를 똑바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를 먼저 하려는 거지요. 하지만 『대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제가'를 운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修身)'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녀를 가르치기 이전에 자신부터 똑바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p.23
부모이기전에 '나'라는 존재가 지닌 기본에 대하여 생각해보다
사람은 옳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해야 하며,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과 애정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간혹, 부모가 되었다는 것을 더러 마냥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노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는 항상 질서를 지키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말인즉, 부모의 삶 그 자체가 자식에게는 하나의 지침서가 된다. 『대학』전8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 자식의 나쁜 점을 알지 못하고, 자기 밭에서 자라는 곡식의 싹이 큰 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모는 자녀의 허물을 맹목적으로 두둔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이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하나,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않는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이 도리어 자식을 불행한 존재로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금 게으른 부모가 자식을 부지런하게 한다
문득, '지금 나는 부모로서 잘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이제 제법 말문이 트여서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아이를 보면 만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아이는 가끔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거나 똑같은 행동을 습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녀석이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더니, 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는 법. 부모가 삶의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자식도 그러한 삶을 살지 않을까 싶다. 동양고전을 두루 살펴본 결과에 의하면 '진정한 자녀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자녀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아닌 바로 부모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렇게 성장하는 존재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삶의 초점을 자식에게 맞추지 말 것이며, 나부터 바로 세워진 삶의 주인공이 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정말 최선을 다할 수 있노라 말할 수 있음을.
'서령의 서재 > 서령의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이 멈추는 시간> : 달라질 수 있는 것이란 오직 나란 존재일 뿐이다 (0) | 2014.08.27 |
---|---|
<생산적 글쓰기> : 우리가 삶을 기록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0) | 2014.08.22 |
<제7의 감각> : 지금 우리에게는 전략적 직관이 필요하다 (0) | 2014.08.06 |
<백만불짜리 습관> : 습관이 당신의 운명을 바꾼다 (0) | 2014.08.01 |
<헤세의 문장론> : 헤르만 헤세, 책과 글쓰기를 말하다 (0) | 2014.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