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가 느려진 사람에 전하는 이야기
책을 읽다가 '속도와 성과' 속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빠름과 느림을 느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인데, 삶 자체를 속도와 경쟁하며 사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욱 깊이 따져보면 삶에 대한 행동이 느려졌을 뿐, 그에 따르는 생각의 속도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컵에 물을 채울 때에도 그러하다. 물을 천천히 붓지 않으면 컵 밖으로 넘치거나 거세게 쏟아질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삶
우리는 살면서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현명하지 못함을 느낄 때, 지혜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일까. 아는 것이 많아 실천력이 좋을지언정, 어찌 그것을 더러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삶에 임하는 자세가 지식과 정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무엇으로 삶을 완성하겠다는 생각도 결국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팽이는 우주의 속도를 따라가는 중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던 중, 발밑으로 달팽이 한 마리가 보였다. 달팽이는 아주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달팽이를 발견하면 사람의 발이나 자전거 바퀴에 밟히지 않도록 한쪽 구석으로 옮겨주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달팽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달팽이의 길을 방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 짧은 순간에 나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내가 애써 마음을 주지 않아도 될 것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주의 속도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진리에 손을 뻗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삶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겨야 하는 것이니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공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나를 '가장 나다운 나'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 나는 특정 종교나 색깔 그리고 사상 따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나만의 개성'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도 있겠다.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도리 즉, 기본을 지키면서 자신의 빛깔을 점점 진하게 밝혀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 누구도 빠르거나 느리지 않다. 끝으로 정목 스님의 말씀을 남겨본다.
「몸은 여기 있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진 않은가요? 불안과 스트레스는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때 찾아옵니다. 몸은 현재에 살면서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탄 것 같은 마음을 애써 달래기보다 그대로 알아차려 보세요. 행복한 마음은 몸과 마음이 일치될 때 찾아옵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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