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의 날개에 감도는 적갈색과 자주색 그리고 회색…
거기에는 창조의 비밀이 새겨져 있다.
온갖 마법과 온갖 저주와 수천의 얼굴을 가지고서
그 비밀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반짝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꺼져 간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우리는 확실하게 붙잡을 수 없다.
- 헤르만 헤서 《정원 일의 즐거움》중에서
서령 : 색채의 오묘한 조화가 새로운 세계를 열다. 형형색색의 조화로움이 우리의 발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곧 창조적 나래를 펼치게끔 유도한다. 자연의 고매한 색채에 가리어진 만물의 본질, 본성… 그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된 창조란 무엇인가. 언젠가 산을 오르내리면서 생각했었다. 이 하나의 산이 창조되기까지의 시간에 대하여. 이 세계가 곧 산천초목의 창조가 시작된 곳이거늘… 나 지르밟는 창조의 땅에 깃든 유구한 역사, 그 역사가 건설한 땅 위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협소한 지적 세계로 말미암아 무지몽매한 인간이 되다.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려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그 무엇을 창조하려고 한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창조적 작품,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곧 다양한 색채의 결합이다. 하나의 색채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산과 들에 입혀진 연초록…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면 대지의 세계가 열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고유한 색을 뽐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색의 조화다. 그리고 창조가 시작된다. 이 느낌을 아는 자, 스스로 자연을 찾아가다. 자연과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살아가기를 갈망하는 자……
헤르만 헤세가 말한다. "나무들은 성스럽다. 나무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나무들은 무슨 교훈을 설교한다거나 처방을 내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무는 개별적인 일에는 무관심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법칙을 알려준다." 진실로 알고자 하는 것을 위하여 자연을 찾아가다. 그 세계를 배우는 과정에서 창조적 발상이 시작된다. 관찰과 체험의 시작이 곧 창조적 발상에 불씨를 던진다. 존재와 존재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 그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 자연의 무한함…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는 유에서 무를 발견하는 것이었지. 그건 역발상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법칙이다. 나는 무한함에서 다시 무한한 창조적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귀를 열어놓고 살아라. 귀가 열렸다고 하여 들리는 족족 가리지 않고 듣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듣고자 하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갈망하던 소리의 발견이 곧 창조의 시작이다. 그것은 떠오르는 영감의 소리, 하나의 계시, 무한한 세계의 숨 트는 소리, 나와 당신을 향해 부르짖는 창조의 비애다. 형체와 소리의 조화, 우리는 이 조화로움을 통해서 색채의 오묘함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소슬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와 풀 그리고 인간의 춤사위를 기억하자. 눈과 귀가 열린 사람은 알고 있다. 창조적 발상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하여. 그것이 곧 머리가 열리는 경지에 이르는 것, 바로 창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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