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42. 지금 이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글쓰는서령 2012. 5. 21. 08:56

 

그가 후각을 이용해 자신의 기억 속에 모아 둔 것들은

이제 일상적인 용어들로는 더 이상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곧 그는 냄새로 나무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나무의 종류까지 구분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도 구분해 낼 수 없는 것들을

그는 확실하게 구별했다.

- 파크리크 쥐스킨트 《향수》중에서

 

 

 

서령 : 지상의 모든 냄새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안으로 들여오는 숨, 공기, 바람 그 모든 것이 지상에 존재하는 객체의 정보를 끌어모은다. 눈을 감고 정보를 분석하기 시작하다. 이것은 달콤한 포도주… 그의 침이 목구멍 너머로 꿀꺽 넘어간다. 비릿한 생선… 콧잔등에 잔주름이 잔뜩 잡힌다.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숨, 공기, 바람 그 모든 것이 지상에 존재하는 객체를 향해 돌아가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걸음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비로소 찾아낸다. 이것은 오로지 몸의 감각, 그 일부의 작용에 의한 예지력이 살아난 것과 같다.

 

눈으로 보다. 귀로 듣다. 입으로 먹다. 코로 냄새를 맡다. 손으로 만지다.

몸의 오관이 인간을 자극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들의 원활한 작용에서 벗어나 어느 특정 감관을 꾸준히 단련하기도 한다. 눈으로 볼 수 없으면 귀와 코 그리고 손의 역할이 더욱 섬세해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눈과 코, 말을 할 수 없어도 눈과 귀 그리고 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냄새로 지각하다. 그러나 후각이 마비된다면, 처음부터 냄새를 맡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다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객체의 본질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인간의 오관은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한계에 다다른다. 더이상 사물의 특성을 지각하여 식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후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다. 어느 이름 모를 산에서 주워온 암석을 두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을 말이다. 오관 중 어느 하나의 감각기관이 유난히 특출한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찻잔에 담긴 물 한 모금으로 찻잎의 채취시기와 제조과정 그리고 차의 시배지…… 이 모든 것을 관장한 사람의 특징까지 정확히 맞추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경험의 산물인가? 그만큼 많은 차를 접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하나의 작품이 있다. 그는 작품의 작업이 시작된 최초의 장소와 완성된 장소, 사용된 재료, 완성된 시간과 그날의 날씨 그리고 작가의 성격과 생김새, 작품이 보관되었던 장소까지 정확히 알아낸다. 특정 감관의 활발한 작용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지금 이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느낌으로 모든 것을 읽어내다. 우리가 글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이용하여 글쓴이의 성향을 추측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눈으로 보다. 이것은 보이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귀로 듣고 코로 맡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보다 강력한 느낌을 읽어내는 것, 바로 청각과 후각이다. 나는 육감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여 청각과 후각의 기능을 높이 평가한다. 그다음에 시각과 촉각, 어떤 대상을 관찰하거나 읽어내기 위해서는 눈으로 먼저 보지 않는다.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와 냄새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뇌에 입력하고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눈으로 먼저 본 대상의 소리와 냄새는 나에게 흥미롭지 않다. 나는 실제적 정보를 먼저 인식하고 싶지 않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남자의 모습을 보라. "그는 후신경(嗅神經)을 통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완전히 파악했다.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돌과 나무, 숲과 나무 울타리, 심지어 작은 얼룩에 이르기까지 그는 냄새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구분할 수 없고, 다시 확인할 수 없고, 그때그때의 일회성 속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독특한 냄새를 수집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아주 정확하게 다룰 수가 있었다."(p.44)

 

특출난 감관으로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끌어모으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어느 특정 감각기관만을 요긴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느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여 느낌으로 지각하여 식별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향수》의 남자, 당신은 그가 자신의 감각으로 파멸한 존재라 생각하는가? 나는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낌의 힘을 온몸으로 흡수해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우리는 이 오감을 꾸준히 단련하여 '느낌을 읽어내는 능력'을 찾아내야 한다. 감각의 개별성을 두루 활용하되, 오감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의 느낌'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진정 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가? 그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