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내면을 잘 관찰하라.
무엇이나 눈에 보이는 외모에 끌려서
그것의 특성과 가치를 간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M.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제6권 중에서)
서령 : 나는 육감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을 인식한다. 그리고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할 행위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나에게 언제부터 육감이 타고난 능력으로 자리매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하나의 존재를 생각하기에 앞서, 그 존재에 나의 심신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육체적 관념을 떠나, 자유로운 허공으로 심신의 기운이 떠오르면 눈을 감고 찰나의 기회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정신을 한곳에 모으고 호흡도 멈춘다. 오로지 내가 집중할 존재 그 자체만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온몸으로 그 존재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정신통일, 나는 통일된 일념만으로 존재의 이면을 꿰뚫는다. 그것은 눈을 감은 나에게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자유로운 허공에 잠시나마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만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이같은 수련을 수십, 수천 번씩이나 거쳐왔다.
어떤 존재와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존재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할 때, 내가 집중하는 것은 그 존재의 이면이다. 나에게 보이는 것은 옳고 그름에 관한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 그 존재가 숨기고 있는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존재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그 존재의 정신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한다. 그 존재 자체에 집중하고 이면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러한 능력은 여지없이 발휘된다. 바로 육감에 의한 행위의 시작인 것이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나의 이면을 관찰한다. 나의 각막을 뚫고 들어가서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들추어내고 그 이면에 숨겨진 본심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니… 나는 나를 속일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나는 보이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오직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에 주목한다. 정작 나 자신도 나를 모르거늘, 그래서 나를 관찰하고 세상 그 모든 것이 숨기고 있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육감은 설명할 수 없는 것. 현상학적 관점을 초월하여 인간의 감각과 행동, 그보다 고차원적인 어떤 능력 중 하나, 그것이 육감인가? 나는 인간의 오관을 뛰어넘는 육감으로 살아간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나의 현재와 미래…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향한 강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육감이 반드시 존재한다. 믿지 못하겠는가? 일단 당신 그 자체만을 믿는 것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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