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40. 너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찾아내지 못하였느냐.

글쓰는서령 2012. 5. 19. 08:41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상태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한단다.

-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중에서

 

 

 

서령 : 모두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짧고도 강렬했던 느낌에 모든 이가 매료되어버렸지. 군중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나 역시 새빨간 깃발을 흔들고 나아갔다. 외쳐라, 또 외치기를 수십 번… 모두가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었던가. 우리가 흔드는 새빨간 깃발이 세상을 조롱하기에 이르러, 그 세상이 성난 투우처럼 거칠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외쳤다. "도망가지 마! 멈춰!" 이대로 투우에 치여서 죽으란 소리인가?

 

비겁한 낙오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깃발을 집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거친 숨결이 나의 모든 것을 에워싸기 시작한다.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온몸을 장악할 무렵, 가까스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아냈다. 성난 투우가 분노의 발길질을 하면서 땅을 흔들어댄다. 모래와 먼지가 회오리바람처럼 돌아다니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들려온다. "내가 도망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디찬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너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찾아내지 못하였느냐?" 이건…… 모두가 원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가 나의 그림자를 낚아채어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도망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 존재가 나의 온몸을 쇠사슬로 묶어버린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한낱 부질없는 꿈이었던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간밤에 잠자리가 뒤숭숭하여 내심 걱정하였는데… 꿈속에서 투우와 혈투를 벌이는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을 찾아냈고, 나는 방에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꿈에 비해 너무나 희망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 어둠 속의 나에게 이 책은 희망의 등불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은 이렇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상태를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한단다."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한…… 나에게 책이 말한다. "너와의 투쟁을 즐겨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라.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언젠가는 모든 애벌레가 나비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너는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

 

"너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찾아냈느냐?" 누리고 싶은 것이 혹,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 누가 날 더러 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으랴. 꿈속의 혈투가 나의 인생을 향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나 비겁하게 도망가는 낙오자가 되었으나, 이제부터 당당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승자가 될 것이라 굳게 다짐한다.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장석주 시인이 이렇게 말했지.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나도 그러하다. 내가 깨닫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 낙오자가 되겠지. 그러나 무너지면 안 된다. 그 상처를 극복하고 끝까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으리라…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세상을 향해 날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