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내 가슴속 램프>

글쓰는서령 2011. 8. 7. 14:40

 


내 가슴속 램프(생각하는동화 2)

저자
정채봉 지음
출판사
샘터사 | 1988-10-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기심과 물질 만능주의등을 매섭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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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우리의 꿈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나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에이, 요즘 세상에 누가 꿈을 그리고 산답니까? 누가 그 꿈을 책임지고 이루어주기라도 하나요? 보장성 없는 보험은 애초에 거들떠 보지 않는 게 상책이에요. 꿈 좋죠. 꿈은 꿀 때만 좋은 거에요. 꿈을 현실로 끌어들이려면…… 갑자기 머리가 아픈걸요. 왜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각종 보험과 재테크 상품. 일정한 기간 동안 꾸준히 대가를 지급하면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이익을 돌려받는다는 우리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중도해지를 할 때도 있다. 아까워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을까? 더 나아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목적이라는 억양이 무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답답한 세상이다. 왜 세상은 첨단디지털산업으로 신속한 편리함을 제공하면서도 인간의 물질적 공간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정신적인 공간까지 파고들어서 혼란스럽게 쥐고 흔드는 걸까? 대가를 치르라는 뜻인가? 조금은 한 템포 느리게 살 수는 없을까.

 

 

 

 

「임금이 거문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리산 도인께서 나한테 보내 온 신기한 거문고인데 이 거문고는 뜯는 사람이 따로 없어도 스스로 소리를 낸다 하오. 다만 마음이 청정한 사람한테만이 들리는 게 흠이오만 경들이야 다들 청렴결백하니 걱정될 게 뭐 있소. 자, 즐겨봅시다." (중간생략)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저 거문고의 소리 없는 곡 이름이 무엇인지 아오?" 정승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도 선뜻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임금이 내뱉듯이 한 마디 하고는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내가 곡 이름을 말하리다. 아첨곡이오. 아첨곡!"」- 본문 중에서

 

꿈 생각하기 싫다고요? 그래도 생각 좀 하고 삽시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생각한다는 것은 고작 이런 거다. '오늘 아침밥은 뭐 먹을까.' , '점심에는 또 뭐 먹지?',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까.' ,'저녁에는 또 뭐 먹냐. 뭐 색다른 거 없나?', '내일은 뭐 입고 출근하지?',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네. 미용실이나 갈까?', '오늘까지 전화해야 하는데, 그냥 내일 할까?', '책 좀 읽어야 하는데, 나중에 읽을까? 어쩌지?', '입이 심심하네, 과자나 사 먹을까.', '쇼핑이나 할까? 요즘 입을 옷이 없네.' 정말 가지가지 하는 생각들뿐이다. 뭐, 여기에 나열한 생각들은 모두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이기적인 모순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이 모습이야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진짜 모습은 아닐는지.

 

정채봉의 <내 가슴속 램프>는 '생각하는 동화책'이다. 우리가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는 평범한 생각은 내려놓자.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짧은 우화 속에 등장하는 삶의 지혜를 통하여 생각의 경로를 잠시나마 바꿔보자. 우리가 말하는 진리라는 것은 복잡한 구조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짧은 시공간에 바람처럼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집중하고 인식한다면 그 진리를 꿰뚫을 수 있다. 진리가 사는 공간 자체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삶 속에 펼쳐진 모든 공간이 진리의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문득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을 찍는 사진기, 지금 당신의 마음을 찍으면 무엇이 보일까요. 사랑? 증오? 슬픔, 행복, 불안, 외로움……

<내 가슴속 램프>에 나오는 '마음을 찍는 사진기' 동화가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걱정된다. 나는 이렇게 밝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살고 있는데, 정작 나의 마음을 사진기로 찍었을 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럼 나는 거짓으로 살아온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대개의 사람들을 찍어본 바로는 참으로 한심한 지경이라고 한다. 감투가 찍혀져 나오거나, 돈다발이 찍혀져 나오거나 남자인 경우에는 여자가, 여자인 경우에는 남자가 찍혀져 나오지를 않나, 또 평수가 넓은 집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도 있다. 박사 학위증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 자가용이 찍혀져 나오는 사람도 있고……"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포착했다. 다른 상징성을 지닌 동화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으나, 이 책의 결론은 바로 이거다. 물질 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삶은 결코 행복의 지름길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정채봉의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의 참뜻을 단순하고도 해학적인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 김복태의 재주가 인상적인 책이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거나 이른 아침에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 읽는 다면 하루가 상쾌하게 시작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