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사람이 불안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섬세한 행위를 하게 하는 손과 발 운동 협응력이라고. 일대일 육탄전에 대한 책을 읽다가 보았다고 했는데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진 상태에서 총알을 장전하는게 매우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열쇠를 구멍 안에 제대로 집어넣었다. 열쇠가 돌아갔다. 조용히, 부드럽게, 완벽하게.」- 본문 중에서
동기 충만. 문제 해결 지향. 빈약한 자아상. 임기응변 부족. 혼란을 헤쳐 나갈 능력 부족. 유머 감각 결여?
<헤드헌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헤드헌터다.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자는 복잡하게 설계된 심층적인 난관을 하나둘씩 무사히 통과하면 최종적인 라운드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다. FBI의 9단계 심문 기법을 활용하여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헤드헌터, 그에게도 말 못할 엄청난 비밀이 있었는데……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는 아내를 위해서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던 것이다. 17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자신의 어중간한 키와 대조되는 늘씬하고 완벽한 아내, 비상한 두뇌와 직관력을 지녔고, 호화스러운 대저택에 살고 있으며, 고가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로게르 브론. 그림 그리는 아내의 개인전이 열리던 날, 아내로부터 엄청난 부와 권력의 소유자를 소개받게 된다. 아내의 적극적인 추천이 극적으로 성사시킨 두 사나이의 관계가 묘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아내를 위해 고가의 예술작품을 훔치는 헤드헌터, 그를 지켜보는 검은 그림자는 그의 아내를 훔치고 엄청난 살인극을 벌이는데……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 속에는 인간이 인간을 향한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이 선사하는 참혹한 최후가 얼마나 크나큰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고가의 예술품을 훔치고 다니는 헤드헌터의 모습은, 진정 아내를 사랑해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억눌린 욕망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은 내게 거의 물리적인 충격을 안겼다.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 사진과 소문으로만 알던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을 처음으로 대면할 때의 느낌이랄까. 나는 이렇게 엄청난 아름다움을 맞다뜨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따. '사자 사냥', '하마와 악어 사냥', '호랑이 사냥' 같은, 디아나의 화집에서 본 다른 사냥 그림들에서 이미 본 색감을 느낄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바보였다. 이 바보 같은 놈이 자신의 명석하고 탐욕스러운 계획을 자랑스레 떠벌이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금방이라도 누군가 저 망할 문을 통해 들어와야 할 텐데! 누군가는 곧 들어와야만 한다. 난 아파 드러누워 있는 환자라고!」- 본문 중에서
자기통제력이 상실된 한 남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를 재구성한 <헤드헌터>
사람을 배신하고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그 모순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느껴진다. 그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헤드헌터. 그는 아내의 임신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향한 질투와 시기심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 그래서 고가의 예술품을 훔쳐서 아내의 충족되지 못한 원초적인 모성애를 달래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절도 행각을 벌인 것인가? 자신만을 사랑했던 아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갈림길에서 이중성을 드러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나머지 이야기는 <헤드헌터>를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 수상하다. 주인공 로게르 브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검은 먹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 사기꾼처럼 느껴지고 대단한 연기력을 소유한 능력자같이 보인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직업 사냥꾼, 그림 사냥꾼, 사람 사냥꾼 이 모든 꾼들이 모여서 엄청난 도박판을 벌인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책을 선택한 사실이.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저자, 요 네스뵈! 현재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릴러 작가라 불리는 그의 최신작 <헤드헌터>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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