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성축일보다 신성한 것은
우리 자신에 의해서 소리없이 지켜지는
마음에 담아 둔 남모르는 기념일들이다.
(롱펠로우)
서령 :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스케줄을 관리하기 위한 다이어리를 계속 쓰고 있다. 월별 계획표와 일일 계획표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나름대로 일정관리를 했던 것이다. 다이어리를 쓰기에 앞서서 항상 당연하다시피 행하는 절차가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의 생일과 각종 기념일을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념일도 표시해놓는다. 또한, 각종 시험일과 접수마감일 그리고 발표일은 물론이며, 운동량과 식사량도 기록하고 누구와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적어놓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거나 혹 받았다는 표시도 해놓고 여행이나 등산 일정도 기록한다. 그리고 하루에 몇 편의 글을 적었으며, 어떤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서 적어놓기도 한다. 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매일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세세한 내용까지 적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놓치기 싫은 기분이 든다. 나한테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행여나 나중에 영영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가끔 나의 이런 생각 자체가 무엇하나 놓치기 싫은 집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나는 적어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달력에 표시된 모든 이야기가 나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이자, 나만의 기념일이었다.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법정 공휴일과 명절 연휴 그리고 각종 행사와 기념일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것이다. 물론, 기념일마다 역사적 의미는 다르며, 그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지정된 기념일을 떠나서 우리 자신의 기념일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생애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는 날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하루에 불과하나, 우리에게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혼인신고일, 결혼기념일, 첫아이 출산, 다이어트 성공, 자격증 취득한 날, 적금 만기일, 각종 목표 달성일 등… 우리에겐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의미 있는 순간들이다.
가슴속에 자신만의 기념일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그 사람은 하루가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는 것이 마냥 서글프지 않다. 언제나 가슴으로 기다리는 자신의 기념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찾아오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기념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더욱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보고자 다짐하게 된다. '맞아. 일 년 전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구나.', '아, 오늘이구나.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니…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해보자.' …… 그렇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내일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오늘 무슨 날이야?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는 말한다. "그럼요. 오늘은 저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랍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간다. 이 가슴속에 나만의 기념일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흔하디흔한 일에 불과할지라도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목표의 가치와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했을 때의 순간도 하나의 기념일이 된다. 대회에 나가서 상장을 받아온 날도 나에게는 특별한 기념일인 것이다. 이 삶에 있어 성공과 실패의 순간마저 기념일이 되고 있다. 언제고 떠올릴 수 있으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삶의 순간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이 기념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은 무한하지 않으나, 항상 적극적인 마음으로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의미 있는 순간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우리 자신이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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