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9. 나와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글쓰는서령 2012. 4. 18. 10:45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결심과 믿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원한 젊음을 선물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령 : 살아가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정신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시공간의 제한적인 영역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는 방식대로 살아간다. 주어진 것을 토대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감을 생산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살아가는 방식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방식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물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 것만큼 오묘한 질문도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 경우, 그 대답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확히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을까.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열정적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다. 열정적인 사람의 몸은 언제나 개방적이다. 그들의 머릿속은 실시간으로 저장되는 지식으로 넘쳐나고,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 가치가 곧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리하여 실제 생활에 투입함으로써, 그 가치의 실용성을 분석하고 판단한다. 그들은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목적의식이 분명하기 때문에 온몸의 신경이 분산되지 않고 상당히 집중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 그러나 그릇된 맹신으로 하여 목적에 시달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목적을 만드는 행위는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도전적 행위와 같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는 곧 가치의 본질을 향한 직접적인 접근방식이다. 실천적 의지가 강한 사람은 제 삶에 뚜렷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실천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인가. 하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인가. 적어도 자신이 사는 이유가 있는 사람이니, 그는 '당신은 왜 사느냐'에 대한 질문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은 피상적인 방식이지, 진정 삶을 위한 도전정신이 아니다. 목적 달성이 삶의 유일한 이유라면, 자신에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삶의 모든 요소는 소모품에 불과하여, 자신을 향한 맹신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목적의 양면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삶을 향한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들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는 것 같다면,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학교와 직장생활에 충실히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니, 공과 사의 개념을 뛰어넘는 목적,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