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스승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부모 앞에서는 결코 늙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누가 늙었다는 것일까. 부모가 아니, 내가 늙었음을 고백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부모와 자식은 누가 먼저 태어났느냐를 논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서도 안 된다. 나란히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인데,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이 관계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 혹, 부담이 되서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하는 관계인가. 아니, 서로의 삶을 평생 책임져야 하는 관계일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시작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일 수 없다는 약속의 성립과 같다. 관계 속에서는 그 누구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배려와 인내 그리고 때로는 희생도 필요하다. 이를 지키지 못한 경우, 관계는 틀어지거나 끊어져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서로 불신이 쌓이고 상처만 덕지덕지 붙인 채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에 내가 한 마디 덧붙여 본다면 서로 살아온, 살아갈 방식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당신은 부모 노릇, 자식 노릇 잘하고 있는가
《엄마 교실》은 0세에서 10세에 해당하는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다. 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가 된 사람과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든 것이 서툰 아이가 서로 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겪었을 법한 상황을 재연하면서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성향과 기질을 이해하고 접근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모가 되면 으레 그러하듯 '나는 이제 진정한 어른이다.'라는 고질병이 시작되어 자녀를 향해 하나의 벽을 세우는 것이 진짜 문제였던 것이다.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던 부모는 알고 보니, 스스로 상처와 모욕에 시달리기 싫어서 '부모'라는 핑계 뒤에 숨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비친 자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울에 비친 자녀를 상상했다.
부모와 자식, 무엇 하나 가려내어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저자가 책에 소개한 저마다의 사연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답이 없으며, 원인과 이유를 따질 수도 없는 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이구나.' 그럼에도 이들의 관계에서 옳고 그름은 정확히 가려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삶과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 잘못된 것을 무작정 감싸줄 수는 없다. 때로는 포근하게 또 냉정한 자세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꽃이 아름답다고 하여 매일 물을 주는 사람은 없다. 꽃을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은 적절한 때를 기다렸다가 물을 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꽃이 시든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마냥 두렵지는 않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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