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요

글쓰는서령 2013. 5. 28. 23:48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저자
이어령 지음
출판사
열림원 | 2010-11-12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통찰과 예지의 문장으로 인간의 영혼을 깨우는 잠언의 시편『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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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의 물이 흐릿해지면 책을 읽는다.

때로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정녕 나를 위해서 배려와 희생의 선두자가 된 것인지, 혹 나는 어떤 보상을 기대하면서 착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세상은 착하게 살면 다친다고 말한다. '적당히 사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보상받지 못한 자들이 세운 법칙이라면, 내가 굳이 따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라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나는 굶주린 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다.

책은 누군가의 삶, 가치관을 대변한다. 책은 단어와 문장의 조합으로 엮어진 누군가의 사상인 것이다. 이번에 읽은 이어령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지혜로운 고목을 연상케 하는 책이었다. 고목은 자신이 찾아야 할 존재의 이유를 독자에게 묻고 있었으며, 나는 독자로서 '우리들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고 동문서답하였다.

 

두 발로 일어설 때

 

이어령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이는 짐승처럼 네발로 기었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을 깨는 일도 없었지요.

 

그런데 보세요. 시키지 않았는데도

기던 아이가 두 발로 일어섰어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위태롭게 발을 떼놓는 것을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고

넘어지면 다시 무릎을 일으킵니다.

이윽고 두 발로 걷기 시작할 때

얼굴의 미소를 보셨습니까.

 

큰다는 것은

네발에서 두 발로 선다는 것

안전에서 위험으로 나간다는 것

 

어떤 짐승이 발레리나처럼 춤을 추고

어떤 짐승이 축구선수처럼 볼을 차고

어떤 짐승이 두 발로 일어서서 널을 뛰나요.

 

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배우던 날

무릎을 깨뜨리는 아픔 속에서

자전거 바퀴가 처음 굴러갈 때

자전거 살이 아침 햇살처럼 눈부실 때.

 

보세요. 상기한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

처음 두 발로 섰을 때처럼

보세요, 갑자기 커진 키의 높이를.

 

성장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우리가 피고 지는 꽃을 아름답다 말한다면, 우리가 나고 자라는 것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소중하기에 고결한 것이며, 단 한 번 뿐이기에 숭고한 것이 바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어령의 <두 발로 일어설 때>는 인간의 성장을 한 편의 영화처럼, 바닷물이 요동치다 스스로 잠잠해지듯- 우리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이는 짐승처럼 네발로 기었습니다."는 이 땅에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인간의 시작을 보여준다. 네 개의 기둥으로 땅을 짚고 다녔던 인간, 이제는 곧게 뻗어 나간 두 개의 다리로 땅을 밟고 다닌다. 이어령은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신념 하나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념은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갈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본적인 것에 대한 망각을 하지 않도록, 잠시나마 신념을 회복하여 생명의 탄생과 신비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가슴에 새겨야 할 사랑의 징표를 전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목의 통찰력과 식견에 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