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나요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고슴도치의 삶으로 뛰어들다.
그들은 온몸에 가시가 돋아난 고슴도치와 같았다. 고요한 정적에 파장을 일으키듯,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재빨리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 그리고 똬리를 트는 뱀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버렸다.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입과 귀 그리고 눈을 막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고슴도치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딱 하나, "너희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그 무엇이 되어라!"고 말해줬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고슴도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죽음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와 같았다. 낯선 문화와 환경을 가져온 클렘, 아이들은 전학생 클렘에게 적개심과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에 분노했으며, 분노를 감추기 위해서 처참히 짓밟기 시작했다. 《누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나요》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의 심리적 특성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고발성이 담긴 청소년 문학이다.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로 이사를 오게 된 클렘. 그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에 대한 희망을 품었으나, 그 누구도 클렘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도리어 클렘의 영국식 말과 행동에 대한 비난과 조롱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 선생님과 불미스러운 관계라는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내가 할 말은 딱 하나다. 학교에서 듣는 얘기를 전부 믿지는 말라는 말씀! 그게 다다. 문자 한 통이면 전교에서 가장 헤픈 계집애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학교가 그런 데다. 가끔은 간절하게 휴대폰 따위 없던 옛날로 돌아가고픈 마음일 때도 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그 시절 얘기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이 없다니 그게 상상이나 되나? 분명 친구 하나 없는 왕따가 될 거다.」p. 23 <코라 켈리의 견해 中>
클렘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모든 것이 진실인가?
책은 클렘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고록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 클렘의 주변 인물이 각자 입장과 주장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클렘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 방관, 체념으로 버텨오던 클렘. 그는 결국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를 참지 못해 터트리고 말았다.
학교 폭력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학교 폭력'이다. 현재 학교에서 청소년으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사건 자체가 성인의 폭력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매체의 영향 즉, 모방학습으로 인한 폭력의 재현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청소년의 억눌린 자아와 욕구가 비현실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청소년. 그들은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놓인 '애매한 존재'다. 스스로 성숙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여리고 순수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특성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사회의 구조가 도리어 청소년의 일탈을 부추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클렘의 사연을 해석하는 방식이 편파적임을 밝힐 수밖에 없다.
작가는 초반에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빌미를 넌지시 던져놓았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 역할을 피해자의 주변 인물이 맡은 것이다. 누군가의 합리적인 선택, 변명으로 인해 피해자는 자신의 존재가 지닌 권리를 박탈당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 클렘에게 소극적인 반항력만 제공해주었을 뿐, 작가는 그 이상의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피해자의 부모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친구들도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진부하게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리지 않았음이 인상적이다. 문제를 던져놓았으나, 작가가 정답까지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로서 생각할 거리를 남겨둔 셈이니 말이다. 한편으론 청소년 문학이 한정된 공간을 맴돌고 있음이 안타깝다. 또한, 청소년을 올바로 이해하고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클렘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난 녀석이 고슴도치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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