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해에게서 사람에게> : 작가들이 전하는 소박한 편지 이야기

글쓰는서령 2012. 3. 19. 15:26

 


해에게서 사람에게

저자
김다은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10-11-1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도시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보내는 자연편지작가 39인의 서정...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나는 새벽을 사랑한다. 이제 곧 시작될 아침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새벽에 나를 맡겨야만 하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나는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기만 했다. 칠흑으로 물든 창문을 파랗게 물들이는 새벽의 붓질이 시작되면 멍하니 그 장면을 쳐다보곤 한다. 그리고 이내 노랗게 칠해진 아침의 창문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못내 서러워서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다. 새벽에 적은 글은 언제 읽어도 감성적이다. 슬픈 로망스와 같은 향기가 난다.

 

사람이 자연에게 몸을 맡길 때,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투박하고 거친 세상이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나의 몸과 마음은 그와 반대방향을 향한다. 느리게 생각하고, 움직이면 낙오자가 되는 세상이 싫었다. 세상이 느림의 미학마저 깡통철학처럼 취급한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투성이다. 《해에게서 사람에게》는 자연에 보내는 편지 묶음집이다. 또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틈새마다 등장한다. 달팽이, 상추, 낙뢰, 팽나무, 단풍잎, 사루비아, 물, 하늘, 자연에 보내는 편지를 쓴 사람들은 누구인가.

 

"30여 년이 지난 어느 초여름 초저녁, 당신의 주름 안에 새겨넣었던 주름 하나를 제가 꺼내봅니다. 상추, 당신의 맛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당신의 주름 안에 기억 하나 넣은 여유로운 초여름 초저녁의 툇마루가 이제는 없습니다. 기억도 이제 없는 것이지요. 그게 언제나 당신을 대하며 그리운 이유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기억을 일으켜 세우는 당신의 무서운 생명의 속도는 아직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그나저나 당신의 주름 안에 자리잡은 외할아버지의 기억이 새삼 떠올라 또다시 편안한 졸음으로 바뀌는군요. 어쨌든 고맙습니다."(p.43 백가흠, 상추에게)

 

 

동경의 대상을 자연에 투영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간결하면서도 고매함과 추상적인 의미를 모두 지닌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해에게서 사람에게》, 나는 이 편지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하나의 풍경이다. 풍경이라 불리기 위해선 누군가는 먼발치에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가 풍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와 당신의 모습은 항상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스스로 꿰뚫어 볼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더러 관망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이치가 보이듯, 나와 당신의 삶 역시 물러나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풍경을 보아야 할 것인가.

 

자신을 초월한다는 것은 곧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감을 뜻하는 것……
이 책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 자신이 새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 이유, 그마저도 이것으로 대변할 수 있으리라. 나도 오늘 편지를 적어보려 한다. 새벽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파고들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다양한 삶과 사람이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느낌이다. 자연에 편지를 적은 사람들은 적어도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오늘은 나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