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96시간>

글쓰는서령 2011. 11. 16. 21:23

 


96시간

저자
테리 듀퍼라울트 파스벤더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11-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고아가 된 한 소녀의 표류기!『96시간』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선원들은 재빨리 빈 기름통을 한데 묶어 임시 뗏목을 만들어, 그것을 화물선 옆 바다에 내렸다. 갑자기 선장이 서두르라며 소리를 질렀다. 언제부터인가 소녀를 뒤따라온 상어들이 구명환 주위를 돌며 소녀의 발 근처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배의 난간으로 몰려와 소녀에게 구명환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소리쳤다.」- 본문 중에서

 

황량한 바다 한 가운데에 버려진 소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걸까.

아서 듀퍼라울트는 열대해의 푸른 바다 위를 가족과 함께 항해하는 멋진 꿈을 품고 있었다. 아서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내 부로시, 손재주가 뛰어나고 활달한 성격의 아들 브라이언, 말 타기와 수상스키를 좋아하는 맏딸 테리 조, 천진난만한 막내 딸 르네가 있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항해를 위해서 블루벨 호라는 요트를 주문 제작하게 된다. 그리고 요트를 책임질 선장 하비를 고용했으며, 하바의 아내도 항해에 동행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마주한 새벽하늘을 바라보면서 낭만적인 풍요로움에 흠뻑 젖어든 듀퍼라울트 가족… 해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물고기 떼를 보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고요히 잠든 요트가 갑자기 뒤틀리면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듀퍼라울트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버린 하비 선장이 깊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요트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그러나 하비 선장이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었음이 밝혀지는 엄청난 반전이 일어난다.

 

 

 

 

「갑자기 문 앞에 하비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테리 조는 그저 두려움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그녀는 악마의 눈을 보았고 지금은 얼굴 없는 그림자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하비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본문 중에서

 

"내 아내도 피를 흘렸습니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피를 흘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96시간>은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다룬 소설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린 소녀 테리 조는 무려 4일동안 망망대해를 안전장치 하나 없는 구명환에 몸을 싣고서 떠돌아다녔다. 가족과 떠난 항해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하여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모두 숨진 것이다. 당시 블루벨 호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는데, 조사 책임자는 유일한 생존자였던 하비 선장의 진술에 따라서 사건의 전모를 다양한 각도로 파악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공군 중령으로 은퇴하고 베테랑 폭격기 조종사와 항해 경험이 풍부한 하비 선장이 요트가 침몰할 당시,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경황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하비 선장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4일째 되던 날, 아서의 딸 테리 조가 극적으로 구출된다. 당시 바다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구명환에 실려 있던 테리 조는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갔고 피부는 온통 화상을 입어 벗겨진 상태였다. 소녀의 체취를 맡은 상어 떼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올 무렵에 구출된 것이다.

 

 

 

 

「다섯 명의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단 한 사람만이 생명을 건진 일을 두고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테리의 생존은 여전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 틀림없다. 그녀 자신도 그 사실에서 큰 힘을 얻었다. 처음부터 테리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고작 열한 살이었지만 테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했다.」- 본문 중에서

 

<96시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소녀의 96시간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었던 소녀가 어떻게 4일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다른 측면으로는 소녀의 강인한 생존본능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테리 조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가족과의 끔찍한 이별… 구명환에 실린 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떠다닐지언정, 마지막까지 살아남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처럼 가족들이 다른 곳에서 구출을 기다리며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가졌다. 책에는 듀퍼라울트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명백하게 그려져 있으나, 실제 사건의 범인과 일치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96시간>은 가족을 잃고 4일 동안 홀로 바다를 표류한 소녀의 극적인 모습을 담고 있되, 책 내용의 일부분은 작가의 추리와 상상이 결합된 것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문득 칠레 광부 사건이 생각났다. 그들은 무려 69일간 깊은 땅속에 갇혀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 생과 사를 논하면서 많은 다툼이 오갔을 것이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 그래도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96시간>의 테리 조와 칠레 광부들이 겪었던 실제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과연 나는 그들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 싶다. 인간이 지닌 불굴의 의지력… 그 심지에 불을 지피는 것은 무엇일까. 테리 조의 극적인 회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