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
「장쇠는 영문도 모른 채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광에 가서 살이 통통히 오른 커다란 쥐 한 마리를 잡아 들고 나왔다. 허씨는 장쇠가 잡아 온 쥐를 죽인 뒤 껍질을 벗겼다. 그러자 쥐의 붉은 살덩이가 흉측하게 드러났다. 허씨는 거기다 피를 발라 낙태한 태아의 모습처럼 만들었다. 그러고는 몰래 두 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화와 홍련은 자신들에게 어떤 무서운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허씨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죽은 쥐를 장화의 이불 밑에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본문 중에서
어여쁜 자매, 장화와 홍련의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화홍련전>
평안도 철산 땅에 배무룡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양반 출신으로 '배 좌수'라 불렸는데, 그에게는 장미꽃처럼 향기롭고 예쁜 딸 장화, 붉은 연꽃처럼 예쁜 홍련이 있었다. 그러나 두 딸을 얻은 기쁨도 잠시, 그의 부인 강씨가 몸이 쇠약해져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부인의 삼년상을 치르고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던 배 좌수는 새 아내를 맞아들이기로 한다. 그것이 장화와 홍련의 비극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계모 허씨는 흉측한 외모에 마음씨는 더욱 망측하여 그 모습은 차마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배 좌수는 허씨를 아내로 맞이했음에도 죽은 강씨와 남겨진 두 딸을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슬퍼했다. 이에 허씨는 배 좌수가 자신과 아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니,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장화와 홍련을 없애기로 결심한 것이다.
「"계모가 특별히 저희 혼인을 훼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재산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저희 아버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가산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재산을 불려 노비 수십여 명과 논밭이 천여 석, 그리고 수많은 금은보화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만약 소녀의 자매가 시집을 가면 그 재물들을 다 가져갈까 봐 걱정하던 계모는 저희 자매를 죽이고 그 재물을 빼앗아 자기 자식들에게 주고자 밤낮으로 흉계를 꾸몄습니다."」- 본문 중에서
계모의 흉계로 연못에 투신자살하여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장화와 홍련, 사무치는 한이 원통하여 구천으로 떠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매의 혼백은 고을에 새로 부임하는 원님을 찾아가 원통함을 알리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원님들은 사연을 듣기도 전에 자매의 혼백을 보고 놀라서 기절하여 죽어버렸다. 그러다 정동호라는 사람이 철산 고을에 부사로 가겠노라고 자원을 하게 된다. 그는 용맹한 두 눈과 대범함을 지닌 자였으며, 마침내 장화의 혼백과 마주하게 된다. 자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정동호… 그는 배 좌수와 허씨를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듣고 엄중한 판결을 내리게 된다. <장화홍련전>은 조선 효종 때 평안도 철산부사로 부임한 전동흘이 처리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지어진 작품이다. 재혼가정에서 전처의 자식과 계모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는 내용으로서, 이를 토대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 새 부인을 맞이한 배 좌수의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계모와 전처의 자식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된 자세를 유지하여, 서로 간의 관계를 융통성있게 잘 다스려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계모 허씨 입장에서 분통이 터지고 심보가 뒤틀릴만도 하다. 대를 이을 장손을 낳았음에도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누가 이해할 것인가?
「부사는 사건을 해결한 후 친히 관속들을 거느리고 장화 자매가 빠져 죽었다는 연못으로 가 보았다. 사람들을 동원하여 연못의 물을 다 퍼내자 연못 바닥에서 장화와 홍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장화와 홍련의 모습이 조금도 상하거나 변하지 않은 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았다. 마치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본문 중에서
물론 계모 허씨가 상상을 초월하는 흉계를 꾸며내어 장화와 홍련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은 벌을 받아 마땅한 것, 여기서 계모 허씨는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친아들 장쇠를 제멋대로 방치한 점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쇠가 보는 앞에서 죽은 쥐의 살을 벗겨서 낙태한 태아처럼 꾸미기 시작하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그러한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장화를 연못가로 데리고 간 장쇠가 일말의 동정심도 드러내지 아니하고, 장화가 스스로 연못에 빠져죽기를 닦달하고도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그 어미의 그 아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거울,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부모는 자식 앞에서 얼토당토않은 체면을 차리지 말고, 근면성실하고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장화홍련전>은 재혼가정의 불우한 측면을 보여주면서 가정의 참된 기능과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우리 고전의 대표적인 성격인 권선징악 또는 인과응보를 엄중히 내비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의붓어머니와의 낯설고 어색한 관계, 친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자식들의 심정, 애정결핍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계모의 그릇된 행실, 원통함을 알리고자 이승을 떠돌던 자녀의 혼령은 세상에 완벽한 거짓은 없되, 그 진실만은 반드시 알려지노라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끔 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