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남겨둔 문장은 ‥‥‥
달밤도 깊은 잠에 빠질 무렵이면 소녀가 머문 방의 불빛도 깊어져만 간다.
잠들지 않는 시간이면 항상 밑줄을 긋는 소녀가 있다. 섬세한 손가락이 한 장 한 장 넘겨대는 불규칙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강아지의 눈동자가 소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따금 눈을 비비며 모든 행동을 중단하는 소녀에게 안겨드는 강아지와 멈춰버린 책장의 흔들림이 익숙하다.
소녀가 중단한 문장은 미처 매듭을 짓지 못해 엉켜버린 실타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딛고 마주한 세상 속에서 ‥‥‥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참된 의미는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다.
소녀가 쌓아올린 책의 두께는 머지않아 소녀의 가치관이자, 삶의 나침반이 되리라.
보이지 않는 책을 딛고 올라선 소녀가 세상을 향해 외칠 첫 문장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독서는 고립된 사고방식을 파괴시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 도리어 고립된 사고방식을 부추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으려나.
그것은 책을 다루는 자의 기술에 달린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책을 마음껏 이용할 권리가 있다.
깨달음은 멈추지 않고 ‥‥
세상의 모든 책은 우리의 깨달음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어 병이 든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책을 만지게 된다.
그것이 책의 유혹, 우리는 그것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진리가 거대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자잘한 파편으로 나누어 버렸다.
그래서 천하에 뿌려진 그 잔해를 저마다 하나 씩 부여받은 셈이다. 그 파편이 바로 책이다.
소녀의 가슴에도 작은 파편이 박혔다. 불규칙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통증이 도리어 반갑다.
그래서 달밤이 차가운 깊은 밤이면 소녀가 밑줄을 긋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뜻인가.
소녀가 중단한 문장은 책을 딛고 마주한 세상 속에서 깨달음은 멈추지 않고‥인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는 그 속도에 짓눌려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소녀의 방에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깨달음은 멈추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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