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서재/서령의 리뷰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글쓰는서령 2012. 2. 20. 14:49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저자
김혜진 지음
출판사
바람의아이들 | 2007-10-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3회 바람단편집. 고학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제1회 바람단편집...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타인에게 속살을 보여주는 것에 관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추면 감추었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면 애써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고 속살을 과대포장하거나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인데, 그래도 누군가는 나에게 눈길 한 번 더 건내주는 관심을 드러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속살은 우리가 감추고 있는 상처와 같다. 혼자서도 충분히 고통스럽기에, 제발 내버려달라고 애원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사라지면 외로워서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다. 상처를 가장한 비상식적인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버린 사람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 상처가 어떻게 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7명의 작가가 저마다 자신의 단편소설을 뽐내고 있다. 강자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약자의 마음,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약자의 마음, 성적순으로 인생을 결정해야만 하는 위기에 놓인 우리 청소년의 속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교육을 전공하면서, 내가 이 학과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내가 청소년교육과를 다닌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이 워낙 별나서, 애들 상대하기 힘들 텐데…"라고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답시고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정작 그 말이 가져올 역효과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적이 개판이라고 사람이 개가 되는 거예요? 아빠는 그렇대요. …… 아빠가 저한테요, 너는 성적이 개판이니까 앞으로 개 취급을 하겠다, 말 안 들으면 무조건 개처럼 패고 엉터리로 공부하면 개처럼 패겠다, 알겠니? 그래서, 제가, 아빠가 무서우니까, 예, 했거든요. 근데 저보고 개가 무슨 예. 라고 하느냐면서 개처럼 짖으래요. …… 그래서 제가 짖었어요. 멍멍. 정말로 개가 된 기분인 거 있죠? 귀염 받는 개도 아니고 복날 가마솥에 삶기 직전의 개. 이런 저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박정애《정오의 희망곡》중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진 않는다. 그냥 일과 사람에 치이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까, 과거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공부밖에 몰랐던 범생이가 아니고서야, 학창시절에 친구와 쌈박질하고 부모 가슴 새카맣게 타들어가게 만들면서까지 사고 치지 않고 성장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공부밖에 몰랐던 사람도 알고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압된 욕구를 해소시켰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학창시절을 외면하면서까지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전히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라는 역할을 벗어던진, 그저 어른이라는 항목에 분류된 사람들은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 더 깊이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역할을 가진 어른도 마찬가지다. '선생으로서의 책임감'을 원칙대로 지켜가고 있으며, 학생에게 진실된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들에게 지켜야 할 선을 그어준 것이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아이들의 속살이 여리고 또 여려서 쉽사리 만질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속된 말로 "내가 공부 안 하고 사고 치느라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라는 생각으로 아이들만큼은 제대로 살아가기를 돕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와서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비행을 부추기고 막다른 길로 걸어가게 할지라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그 아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에게 속살을 보여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감추고 또 은폐하려 들 것이다. 그러한 결과의 일례로 현재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제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아무쪼록 청소년 문학은 이렇게 현실을 냉정하게 고발함으로써 우리에게 안일한 태도를 반성하게끔 해주는 역할이 크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항상 가까이하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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