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이 하하하>
뒷산이 하하하
항상 무언가를 언급하는 기준점은 인간이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이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생활 속의 크고 작은 생산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한다. 자연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일어난 우면산 산사태는 예고된 참사였다고 한다. 왜 알면서도 그렇게 방치를 해놓았을까? 산을 산이라 보지 않았던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이 무고한 생명을 희생양으로 삼고 말았던 것이다. <뒷산이 하하하>를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중부지방에 내리는 빗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곤 했었다. 그래도 '별일 있겠어?'라는 안일한 태도는 순식간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180도 달라졌다. 산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산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많은 걸로 안다. 왜 좋으냐고 물어보면 딱히 그럴싸한 대답도 없다. 그냥 좋단다. 그래서 수시로 산을 오르내리며 산사람이 되고자, 산을 닮아가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살아도 산, 죽어도 산이 될 테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에, 적어도 산의 가치는 쉽사리 하락하지 않을 듯싶다. 산보다 앞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산을 '뒷산'이라 부른다. 집 근처에 산이 있는 사람은 익숙한 풍경이겠으나, 이 책이 다루는 주된 내용은 '뒷산'에 꽁꽁 숨겨진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라, 산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아 뒷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뒷산에 가면 우리의 희로애락이 새벽이슬처럼 내리깔려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책이라 보인다. 산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숲이 빈약해지니 물길도 다 말랐다. 늘 흐르던 삽자루만한 실개천도 없어진 지 오래다. 물이 없는데 물고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물가를 기웃거리던 동물들은 자취도 없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조류만 몇 종 보인다. 약수터 뒷산만 가지고는 그들도 벌써 씨가 마를 일인데 그래도 새들은 주변의 산들을 넘나드는 날개 덕분에 겨우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모든 존재들의 발자국은 땅에 새겨진다. 땅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생명을 일구는 바탕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터전도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물고기가 사는 강물과 바닷물도 땅 위에 담긴 것이다. 비상과 유영의 시원이 모두 땅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부러진 나무, 찢겨진 나무, 뿌리째 뽑힌 나무가 무성한 숲의 실태를 고발한다. 아니, 고발이라기보다 실상을 알아달라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약수터를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은 묵묵히 세월의 무게만큼 무거워진 물통을 낑낑대며 산을 오르내린다. 첨벙거리는 약수가 조금이라도 새어나올세라 내려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고도 경쾌하다. 산도 산이거니와 이토록 섬세하게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물을 묵직한 책에 담아온 저자의 솜씨가 활달하게 헤엄치는 잉어처럼 느껴진다.
산의 앞과 뒤는 인간이 정한 하나의 기준점에 불과하다. 산이 존재하는 그 자체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내가 앞에 있으니, 산이 뒤에 있노라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이 짧은 문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만, 나머지는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떠넘기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항상 내가 생각하건대, '공존'을 반드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산을 마음껏 음미하고 만끽한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숲 속에 드러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훔쳐보는 느낌을 받았다. 약수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단순한 수질검사에 의한 것일까. 산 자체가 오염되는 세상인데, 산에도 유효기간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변질된 숲 속을 걷고 싶지는 않다. 산을 지키는 법이라…… 나는 이 책을 읽고 그토록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우리의 푸른 산을 어찌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잠시나마 고민에 휩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