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그대가 사는 세계를 깨뜨리고 나아가라. 때로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데미안
나만의 사상을 지니고 싶은 간절함, 그래서 책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훔쳐보는 세상이 이토록 음흉하고 섬뜩할 줄이야!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 그러나 유명세에 휩쓸려 맹목적인 찬사는 하지 않겠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시점에 읽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나 자신을 수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면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수용과 통제, 그것은 데미안이 지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글쎄, 이것은 인간의 자아 분열성을 논하는 것인가? 선악의 기로에서 두 눈과 귀를 막아버린 아둔한 자의 성찰을 보여주는 것이자, 그자가 이룩한 폐쇄된 공간이 지닌 희소성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그 공간이 장차 파괴되어 현실성을 지니게 되는 최후의 순간이 오는 날…… 인간의 자아가 공간을 뚫고 나오는 그 진귀한 현상을 간접적으로 목격하게 되리라.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 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질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 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돌처럼 딱딱한 날개를 등에 숨기고 사는 소년의 모습은 나의 유년시절을 대변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허구의 세계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던 소년은 이내 자신의 비열함을 깨닫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 허술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침입자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언급한 '돌처럼 딱딱한 날개'는 그저 하나의 상징적 비유에 불과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소년 싱클레드의 내면에 억눌린 자아정체감을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년을 찾아온 막스 데미안, 그는 물속에 침체된 소년의 또 다른 형상이었을까.
영적인 투시력과 예지력을 지닌 막스 데미안, 그는 소년에 말한다.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다른 사람들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스스로 느끼지. 그들에게는 어느 명예 있는 남자건 날마다 하는 일들이 금지되어 있어.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폄하되는 다른 일들은 허용되어 있어.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스스로 정립한 기준점에 부합하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의 올가미 속에 갇힌 신세일 뿐이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시인으로 혹은 광인으로, 예언가로 혹은 범죄자로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본문 중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내가 알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결국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사는 것… 어쩌면 나는 지금 이대로의 삶에 안주하고자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은 아닌가. 아니, 내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투쟁하기 싫어서 타협하고 말았던 지난날의 부질없는 짓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에밀 싱클레어와 막스 데미안이 보여준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소년기의 성장 과정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찰나의 섬광처럼 깨어진 알껍데기를 들추어내고 다시 태어나는 소년의 모습!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알이 절로 깨지면서 부화하는 새의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당신을 감싸고 있는 껍질의 두께를 탓하지 말고 끈질기게 두드려야 할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 공간 속에서 영원히 웅크린 채로 잠들고 싶지 않다면…… 책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 언젠가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각자 모두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완전히 자신의 작품이며 자신의 것인 생활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자 노력하는 우리. 그러나 매 순간 현실에 부당함에 좌절하고 쓰러진다. '나는 안 되는 거야.', '차라리 그들과 같은 길을 가야 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만 더 신중하게 고민해보자. 차라리 같은 길을 가되, 정체성마저 포기하면 안 되리라. 삶의 목적, 내가 <데미안>을 읽고 느낀 것은 '삶은 언제나 투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라는 것을 배우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항상 의식하면서 '깨어 있는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안일함에 취하여 비겁한 몽상가가 되지 말 것이며, 언젠가는 지금 우리가 머무른 곳을 과감히 떠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진정 다시 태어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내가 사는 세계를 깨뜨리고 계속 나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