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책제목 :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지은이 : 홍부용
출판사 : 문화구창작동
역할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개념을 벗어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역할의 기준점이 모호해지면서 다양해졌음을 말하고 싶다.
여자는 여자의 역할이 있고 남자는 남자의 역할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역할이 결정될 것이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역할의 개념은 제외하고 말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각종 생활비와 아이에게 들어가는 양육비용이 만만치 않아
한 사람의 수입으로 살아가기에는 어렵다는 점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예전에 모 프로그램에서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살림하며 사는 모습을 봤다.
흔히, 여성이 일하고 남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남자가 오죽 능력이 없으면 살림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능력 그 자체를 두고 남자, 여자를 거론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닐까?
서로에게 적합한 역할이 있으면 그에 따라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제도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터라 사회적 인식과 일치되지 않는
남녀의 역할 전환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넓은 아량이 필요할 정도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와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하고
주위 사람에게 장래에 대한 촉망을 받았던 남자가 이런저런 핑계와 함께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을 백수로 지내오며 아홉 살 딸과의 좌충우돌을 보여주는 홍부용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아빠도 재활용됐음 좋겠다."
"재활용?"
"웅.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쓰이면 좋잖아."
아영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 안을 유심히 보며 중얼거렸다.
"재활용?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쓰여?"」p.41
주인공 태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대표하고 있다.
경제력이 사라지면서 가정에서 주도권마저 상실하고 마는 아버지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씁쓸한 태만의 상황을 유쾌하게 엮어나간다.
매일 반복되는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와 자신의 무능력함을 매일 퉁명스럽게
찔러 대는 아홉 살 딸의 볼멘소리에 억장이 무너지는 태만!
학교에서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친구들과 교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딸 아영이는 자신의 아빠를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아영아, 아빠는 물건이 아니잖아."
"하지만 엄마는 늘 아빠를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하는걸요."」p.15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일반 소설이지만 그 안에 내포한 진정한 의미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가진 문제점도 종종 등장한다.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주겠다, 먹을 거 걱정 안 시키겠다던
결혼 전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아영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놀고 있다.
지수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p.34
경제적 주도권을 가지고 큰소리 떵떵 치는 아내의 역할을 통해서 본의 아니게 직장을 잃고
주춤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
주인공 태만은 오랜 시간 백수생활을 했지만, 항상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잃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만의 감성으로 '아빠' 그 자체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일에 도전하게 된다.
홍부용 작가의 재치 발랄한 신선한 소재!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를 읽고
오늘도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닌 채 끙끙 앓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