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의 교육론> : 교육에 임하는 자세를 점검하며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육이라면
이에 우리는 어떤 사고와 가치를 지닐 것이며, 그 방법과 최종 목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개인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교육은 세상의 건설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식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보다 빠르게 습득하여 활용하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에 대한 소유욕은 아주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의 본질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성질 혹, 우리가 처한 현실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가려내고 남은 찌꺼기에 그 본질이 숨어있을 터, 이미 버려진 것을 다시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인즉 더 나은 환경에서 우수한 교사로부터 최상의 교육을 받는다고 개인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턱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스스로 학문에 임하는 것이 마냥 불평불만을 털어낼 것도 아닌 그 중간지점,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공정한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셀의 교육론으로 바라본 '아동 교육'의 참된 방향과 역할
버트런드 러셀은 교육의 본질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바로 성격교육과 지식교육이다. 우선, 글이 보다 구체적인 성격을 지니기에 앞서, 지금 이 글은 러셀의 교육론에 대한 나의 생각과 문제 제기에 관한 것임을 밝혀둔다. 하여 러셀이 주장했던 바와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러셀의 성격교육이란 갓 태어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되, 스스로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성격의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러셀은 성격교육의 중요성을 영유아기에 맞추어 설명한다. 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인데, 이들의 집요한 교육열이나 섣부른 성취욕구가 아동의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아동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생활의 질서나 사회 규범 또는 도덕관 및 성교육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놓치는 것 없이 '교육의 본질과 원리'를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동을 더러 수동적 존재 즉, 교육을 제공받는 입장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러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동이란 진취적이며 자발적 욕구가 충만한, 어떤 관념이나 편견에 사고가 고립되지 않은 자유의 상태를 지녀야 한다. 또한, 아동은 그 수준과 상태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의 교육이 필요하며, 부모의 권위에 따른 복종이나 굴욕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다시 러셀이 말하는 아동에게 필요한 성격교육이란, 아동이 부모로부터 일차적 독립을 시작하는 유아원 입학을 기점으로 성격의 원만함과 기본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설명된다. 여기까지가 전적으로 부모의 교육 철학과 방식을 필요로 한다면, 나아가 지식교육은 이에 힘입어 교사와 교육 기관이 추구하는 교육상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동이 정식으로 교육기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가 이미 지식으로의 습득 자세 즉, 인내와 성실로서 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필사적 훈련이 시작된다. 여기서 러셀은 또래 친구들과의 교제가 지닌 중요성에 대하여 재차 강조한다. 특히, 아동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동으로부터 동기부여 및 모방학습의 실현성이 커지므로, 아동은 선·후배간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여의식은 부모와 교사가 어떤 교육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렸다. 쉽게 말해서 아동에게 필요한 지식이란, 이처럼 자유로운 상태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지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텍스트 학습으로 인한 지식습득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발적이지 않은 주입식 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될 듯하다.
「전 학년을 통해 지적 모험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해 준 공부 외에 스스로 어떤 것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정해 준 공부가 너무 과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칭찬을 받을 만하면, 언제나 칭찬해 줘야 한다. 또한 잘못이 지적되더라도 비난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학생들은 결코 그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육에서 가장 강한 자극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지식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열심히 배운 지식은 그의 영구적인 재산이 될 것이다. 지식과 현실생활의 관계를 학생들에게 가시화하고 지식에 의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줘야 한다.」p.239
아동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자녀를 둔 부모에게 나는 <러셀의 교육론>을 한 번쯤 읽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러셀의 교육론으로 해석하기에 다소 과장되거나 축소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더러 러셀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충돌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나도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있어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면 <러셀의 교육론>은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교육은 인간의 성장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요, 감히 생략할 수 없는 기능인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자발적 학습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환경, 여기에는 사회의 문화, 제도, 규범을 포함한 사상, 종교와 같은 요소가 인간이 지닌 자발성을 억제하고 있음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에 굴하지 않아 '교육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자발적 학습으로 삶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나는 로크의 백지설이나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 그리고 러셀의 교육론을 통합하여 '인간과 교육'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보려고 한다. 저마다 뼈마디가 굵어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교육론이되, 여기서 내가 정립해야 할 교육관에 덧붙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번에 읽은 <러셀의 교육론>은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먼저 이 책은 자녀 양육에 임하는 나의 교육관이 현실적인지 혹, 미래지향적인지에 대한 점검을 시도하게끔 했다. 또한, 그동안 내가 경험한 모든 교육에 대한 그 본래 목적과 기능 그리고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끝으로 나에게 '인간에게 있어 교육이란', '인간의 완성은 무엇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로써,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버트런드 러셀의 인상적인 문장 하나를 남겨본다.
「진실과 사실을 혼동하는 것은 위험한 잘못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히 사실에 지배되는 것뿐만 아니라 희망에 지배되기도 한다. 즉 사실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식의 진실이란 인간 정신의 감옥일 뿐이다. 꿈은 현실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대용품일 때만 비난을 받아야 한다. 즉 꿈이 자극이 된다면 그 꿈은 인간의 이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활기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유년기의 상상을 죽이는 것은 현실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 즉 땅의 밧줄에 얽매여, 천국을 창조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p.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