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모네, 단념적 희망이 되다.
얼굴에 싹이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어느 꽃 한 송이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아네모네, 단념적 희망을 품은 여신,
결백함을 빛내기에 충분한 순백의 미소, 몸짓 그리고 얼굴-
그녀가 사는 마을은 해가 내려앉는 어둠이 찾아오면
향락의 곡주가 시작되어 거리마다 이름 모를 꽃송이가 우수수 날아다녔다.
꽃잎으로 물든 길을 걸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단념적 희망인가요."
얼굴에 싹이 돋아나려면
나를 관통하는 뿌리의 힘을 견뎌내야 합니다.
무언가 나를 뚫고 지나가는 그 순간은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이상 세계를 향한 기회이기도 하지요.
체념된 얼굴에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대의 삶에 묵시적으로 생겨난 통증,
그 원인을 찾아내어 치료하는 것에 치우치지 말고
그대가 통증의 일원이 되어 삶을 영위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삶은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의 무엇을 만들기 위해 부여받은 것입니다.
태곳적 자연에서 태어난 이 몸은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한 대지의 한 귀퉁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산천초목 젖줄 따라 내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기 시작,
장차 꽃으로 태어날 생명을 잉태한 몸으로
지상 그리고 지하의 세계를 두루 관광하는 시간을 보내곤 했지요.
갈망에 의한 선택보다
내가 내린 선택에 의한 삶의 부활을 갈망했으며,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동안에도
내가 나를 부질없노라- 다그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세상에 공개된 사상과 논리 그리고 이성과 지성을 펼쳐놓고
왜 진리는 하나로 치부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뇌를,
내가 한 줌의 재, 흙, 한 방울의 물이라면
현실의 강에서 떠오르거나 가라앉음이-
혹 휩쓸리거나 밀려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들.
가령 나의 본성과 본능이 세상으로부터 조롱받아 퇴출당했을 때,
어찌 세상은 나의 뜻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그대는 이렇게 살다가 떠나면 족한 존재입니까.
단념적 희망,
결핍의 땅에 뿌리를 내린 한 줌의 생명,
거칠고 메마른- 석고처럼 굳어버린, 그래서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그 땅에
마땅히 고개를 쳐들고 아네모네의 꽃잎을 한 장, 한 장 펼칠 때,
그 행위는 단념에 굴복하지 않은 여인의 신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네모네!
그 순백의 미소 너머에는
순수하고도 요염한 나의 지성이 있다네.
그러나 여인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기에
그 누구의 손이 닿으면 금새 시들어버리는 단념적 수명을 지녔다네.
마치 그대를 배반하려는 어둠의 신처럼
세상을 마음껏 유린하다가 짧게 피고지는 찰나의 꽃과 같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대에게 그 무엇도 버리지 않은 순수한 결정체를 보여주었네.
내가 왜 단념적 희망이 되었는지.
-書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