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생각하는 방

섭취와 흡수 그리고 소화

글쓰는서령 2012. 12. 26. 00:56

 

 

 

조절에 능한 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찾아낸다.

이것은 내가 학문에 임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앎을 향한 기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나의 자세를 점검한다.

뜻을 품어, 그것을 활짝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자칫 자만과 탐욕을 부추기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하라.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한가.

진리에 도달하려는 정신 상태가 중요한가.

 

내가 독서를 꾸준히 해오면서 하나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행위, 독서하는 습관에 빠져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왜,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본질은 그 '행위' 속에 있는 '앎'을 구하는 것이니까.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어떤 행위에 익숙해졌을 때야말로

나는 잠시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 행위의 달인이 되었다고 하여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니.

 

글을 쓰는 것도 그러하다.

여기에는 글쓰기 기술의 습득과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감성 순환을 말할 수 있다.

그 용도와 주제, 형식이 뚜렷한 것(글)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요,

어떤 내적 충만, 자아 성취, 감성의 표현을 위한 것(글)은

글 쓰는 사람이 애써 갈고 닦은 자신만의 창조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허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어찌 이러한 해석과 관점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내 잠시 붓을 놓았으나,

붓을 잡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고자, 노력하던 때를 떠올려본다.

보고 들어- 그것을 수백, 수천 번 흉내내어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을 때,

매 순간, 하나의 고비를 극복하여 넘기는 순간이면

나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임계점에 올랐다.

때로 그것(임계점)마저 극복하여 능력을 단련하라는 유혹이 찾아왔으나,

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본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잠시 '배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인간에게 습득의 과정을 알게 하는 것이요,

그러나 '습득'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 몸소 깨달아 얻은, 구한 가르침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시습(時習), 배운 것을 때때로 다시 익히다.

나는 경청, 공감, 소통, 학습에 있어 '채우고 비우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아닌 것을 향해 몸과 마음을 열어야지만이

진정으로 다가가며, 함께하고, 나눌 수 있으며,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무언가를 배움에 있어서 공자의 말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 안에 축적된 것은 오롯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이다.

 

하여 나는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왜, 배움의 연속선상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고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라.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충분히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충분히 배우되,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멈추어야 할 것이다. 도달하려는 욕망은 참된 것이나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배움의 끝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그것을 왜 배우고 있는가? 본능에 충실한 동물, 그 본능의 이로운 점을 본받아 우리의 학습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따금 격렬한 감정에 사로 잡혀서 학습의 욕구를 엉뚱한 곳에 쏟아내면 안된다. 그 욕구는 배움의 원천에서 건져내고 다시 풀어주어야 마땅한 것이라. 그래서 배우면 나날이 더해지는 것이고 그를 다시 비워내는 것이 곧 도를 닦는 것이다. 비움과 채움의 아름다운 조화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가치관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나는 항상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는

내가 아닌 사람, 동물, 사물, 지식, 정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여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대하여 재차 돌아보는 것이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니, 그것은 나를 채우기 위함이요.

다시 비워낸다는 것은, 그것이 나의 완성은 아니라는 것이니.

 

신체적 감각보다 정신의 감각, 통일, 조화가 필요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서예와 그림을 배우면서

이 네 가지 행위는 정신상태부터 정립되어야 몸이 따라주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허나, 정신 상태의 정립이 쉬운 것인가?

그러니, 우리는 '배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해석의 결과는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

이유인즉, 우리는 '배운다는 것'에 접근하는 정신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