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극한기
책제목 : 청춘 극한기
지은이 : 이지민
출판사 : 자음과모음
2000년 장편소설 「모던보이: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제5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이지민 작가의 새 장편소설 「청춘 극한기」
사랑을 하면 사랑니가 난다고 누가 그랬던가.
어린 시절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은 오직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가.
유난히 맑은 얼굴에 여드름 하나 얼굴을 볼록 내밀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던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그들만의 사랑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랑하게 되면 믿을 수 없는 것조차 믿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럼 모두 믿을 수 없는 것들을 이토록 간절하게 믿으며 오늘을 사는 걸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에게 청춘이란 무엇이며, 또 지금이 바로 청춘의 시작인가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는 지경이 놓이게 되었다.
<청춘 극한기>에 화자로 등장하는 옥택선.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 해본 지극히 무료하고도 단조로운 생활에 젖어 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소개팅제안이 들어온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남자아이들은
대개 그렇듯이 '대통령', '장군', '의사'와 같은 허무맹랑한 장래희망을 꿈꾸는 게
대부분이었음에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옥택선, 그녀는 '과학자'가 되겠다던
남자아이들을 보며 결국 그들은 과학자가 되지 못했음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내심 진짜 과학자가 된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런 그녀에게 소개팅 상대자는 다름 아닌 '국립면역연구소'에 근무하는
분자 바이러스 박사 남수필이었다.
매일 생쥐 실험을 하면서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참회의 기도를 위해서 미키마우스 인형을 수집하는 남수필.
약간 괴짜 같은 면이 상당히 보이는 남수필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이 남자와 계속 만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는데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 옥택선.
소개팅남 남수필이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고 그와 함께 옥택선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G-10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떠난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G-10 바이러스는 일종의 사랑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고열 증세가 나타나고,
급기야 특정 상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소에 말이 없던 사람도 재잘재잘 말이 많아지고 머지않아
특정 상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게 되는 특이한 바이러스다.
신종 G-10 바이러스에 걸린 최초의 생존자인 '택선'을 생포하여 국내를 넘어서
세계 최초의 바이러스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 접근하는 '이균'.
그는 처음에는 용의주도하게 택선의 곁을 지키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택선은 '이균'에게 사랑을 느끼는 바이러스에 전염된다.
그렇게 G-10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일정한 시기와 통증을 겪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고 남는 건
씁쓸하면서도 아른거리는 작은 흔적과 기억일 뿐이다.
이지민 작가는 <청춘 극한기>에 나오는 G-10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모티브로 이 소설을 구성했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치료약을 구하고 이미 감염된
사람을 두려워하며 접근금지령까지 내리는 둥 너무나도 많은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바이러스의 위력을 청춘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재탄생시킨
작가의 기발한 재치와 상상력이 신선했다.
청춘이란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일까?
「마법의 시간이에요. 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만나게 되는.
잊고 지내던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이 찾아오죠. 그게 왜 오는지는 몰라요.
그 비밀은 본인만 풀 수 있는 거예요.」p.245
청춘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다녀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왜 나에게는 청춘이 없느냐고 으레 반박하고 애를 태워도
이미 지나간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청춘 극한기>가 하는 말은 청춘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고,
그 청춘이 찾아왔을 때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소중히 보살펴주고
떠나보내라는 작가의 간절한 속삭임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춘(靑春)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을 뜻한다.
그것은 십 대와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찬란한 봄과 같은 시기와
나이를 말하는 것이다.
「봄날은 간다.」라는 말이 「청춘이 간다.」라고 들리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청춘 극한기>를 읽으며 나의 청춘을 떠올려본다.
과연 나의 청춘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느냐고 자문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