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인생의 장막이 내려올 때, 생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된다.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 위의 초라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무대 위에서 우쭐대고 초조해하지만,
한 번 가면 소식이 없는 법.
인생은 천지가 지껄이는 이야기다.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 셰익스피어 《맥베스》중에서
서령 : 애매하게 살지 마. 차라리 아주 못나거나 잘난 사람이 되어야지. 어중이가 될 바에는 그냥 바보 아님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그래. 죽도록 파고들거나 그렇게 못 하겠으면 아예 시작을 말아야지. "물에 손 한 번 담갔다고 그게 손을 씻은 거라고 말할 수 있냐." 눈치나 실실 살피면서 기웃거리지 마. 그냥 조용히 있어.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흉내 낼 생각은 하지 말란 말이다. 세상의 무대에서 내가 곁다리가 될지, 행인이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거든. 내가 뭘 하든지 간에 남들은 생각보다 크게 신경을 안 써. 왜? 전부다 제 사는 것도 벅차거든.
젊으나 늙으나… 상상 속의 청중을 인식하는 것은 변함이 없더라고. 마치, 꼭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제 입었던 옷을 오늘 한 번 더 입는다고 누가 뭐라고 해? 사람들은 신경 안 쓰거든. 내 이마에 밥알이 하나 붙어있어도 "이마에 밥알이 붙었네." 그게 다야. 그 문제를 가지고 나란 존재를 온종일 싸잡아 욕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럴 여유도, 이유도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존재일지도 몰라. 어떤 사람의 흉을 발견했을 때, 온종일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우월감에 흠뻑 취하는 거지. "역시 내가 똑똑하다니까?"
장막을 걷으라고. 그럼 비로소 인생이 시작되는 거야? 누구의 무대인지, 오늘의 주제는, 오늘의 이야기는 뭐야. 누가 주인공이야? 한껏 치장한 모습을 뽐내며 무대의 중심을 장악하고 싶었어. 나나 당신이나 다른 게 뭐 있지. 목소리 큰 사람이 주인공인가. 반듯한 낯짝이 정녕 우리의 실체였던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낯짝은 지나가는 곁다리로 낙찰! 가끔 그를 에워싸고 우리는 시끄럽게 떠들곤 하지. "생긴 것 좀 봐! 진짜 섬뜩하다." 혐오스러운 괴물이라도 본 것 마냥, 우리는 황급히 그를 지나치곤 했다. 곧 무대 밖으로 끌어내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가두어버렸지. "당신은 무대에 올라올 자격이 없어."
인생의 장막이 내려올 때, 그가 비로소 무대 위로 올라왔어. 그리고 그 흉측한 가면을 벗어던졌지. "이게 내 본래 모습이야." 우리는 가면을 보았던 거야. 그의 참모습을 발견한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불빛이 오직 그를 집중적으로 비출 무렵…… 장막을 살짝 들추어 본 우리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지. 오늘의 주제가 말하고자 했던 생의 클라이맥스가 시작되고 있었던 거야. "아까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누가 당신에게 그 물음에 답할 것인가. 그를 무대 밖으로 밀쳐낸 자가 누구였던가.
무공한 걸음으로 무대를 걸어 다니는 그의 모습… 허공을 떠도는 듯한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흐려지다. 그리고 다시 입체적으로 살아나 생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다. 그는 춤을 추었다.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무대 전체를 장악하다. 돌고 또 돌아다닌다. 우리는 그를 보고 있다. 그 누가 그의 곡조에 장단을 맞출 것인가. 우리는 그저 애매한 몸짓으로 그의 행위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애매하게 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럴 바에 차라리 아주 못나거나 잘난 존재가 되라고. 누가 그렇게 말했어?
번뇌를 씻어내는 역동적인 춤사위, 그 하나하나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이 황홀하기 그지없구나. 그를 따라다니는 조명의 찬란함마저 저 먼 곳에서 솟아오르는 태양과 견줄 수 없는 것이거늘…… 그의 청중은 누구인가. 우리는 여전히 상상 속 청중을 품 안에 끌어안고 살아가잖아. 그는 누구를 위하여 춤을 추는가. 지금 그의 삶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우리의 숨이 넘어갈 듯……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공의 걸음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인생은 장막을 내려야 시작되는 것인가. 나 사는 곳이 하나의 무대라면…… 장막이 올라갔다는 착각을 하지 말지어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사는가. 나 사는 모습,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었기에, 장막이 내려와야 진정 나와 만날 수 있는 것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