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36.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두려운 것이다.

글쓰는서령 2012. 5. 15. 05:33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변화가 없이 무슨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보편적인 이성에 대해 자연의 본성인 변화보다 더 친밀하고 적당한 것은 무엇인가?

만일 장작이 불덩어리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목욕물을 데우며,

음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영양을 흡수하겠는가?

그 밖에도 변화를 거치지 않고 유익한 것으로 형성되는 것이 있나 살펴보라.

당신이 변하는 것도 이와 같다.

변화를 두려워 말라.

그것은 자연의 필연적인 순서이다.

(M.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중에서)

 

 

 

서령 :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나를 다스리겠다는 일념으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변할지는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다. 때로는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겨우 이 정도로 내가 흔들리다니… 나를 흔드는 것은 무엇이며, 왜 나는 흔들렸는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만족하기 때문이었을까. 더이상 발전이나 변화는 추구하지 않았단 말인가.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는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망설여지는 것은 바로 가치관의 변화다. 누군가 나에게 '가치관을 바꿔라.'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가치관이 변하면 나라는 사람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 모든 말과 행동, 습관…… 그 밖에도 바꾸어야 할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문득, 이러한 생각 자체가 모순이라는 걸 느낀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변하고 또 변하는데, 왜 가치관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 지었던가. 나 자신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는 건……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알면서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나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저 나란 존재에 불과했으나, 이 변화로 말미암아 나란 존재 그 이상의 것을 인내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 삶에 변화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진리와 같은 것인가 보다. 변화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나, 나는 희생의 의미를 도약으로 삼고자 한다. 변화는 피할 수 없기에 즐겨야만 하는 의미로서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두려운 적도 많았으나, 나는 과감히 변화의 서약서에 지장을 찍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