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어떤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지점은 다 숭고한 목표에 통할 수 있는 출발점인 것이다.
당신이 서 있는 환경이 당신의 출발점인 것을 알라.
마음이 견주는 것이 높으면 누구나 높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진실로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독자적인 아름다움일 뿐 아니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 아름다움을 비춰 주게 된다.
(J. F. 밀레)
서령 : 생각은 멈추지 않아요. 오히려 질겅질겅 씹히는 오징어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죠. 그 생각의 핵심은 바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에요. 뭐, 나는 대한민국 그 어딘가에서 살고 있어요. 어느 지역 변두리에 있는 초가지붕 아래서 이 글을 적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빗물이 새는 지붕 아래에 살고 있지는 않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협소한 공간의 일원이 되어 살고 있는 처지이나, 내 마음은 이곳에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은 보다 넓은 공간을 추구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그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거든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나는 글을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계획이고요. 어쩌면 나는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인지도 몰라요. 참 단순하거든요. 뭐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참 단순하구나.' 단순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죠.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하고야 말겠다는 독기도 품지 않았거든요. 아, 처음에는 독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래야 단순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으니까요. 내가 사는 모습이 단순하기 짝이 없으니, 나는 평생 단순노동이나 하면서 살아가겠구나, 싶었던 거죠.
그런 나에게도 원대한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꿈은 단순하지 않았어요. 그 꿈을 이루려면 무언가 복잡한 설계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도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계획이었나 봐요.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야, 너는 보잘것 없지만, 계획만큼은 현명하게 세워라. 너처럼 세우지 말고" 뭐죠. 이 씁쓸한 기분은?
"너 지금 어디야? 거기서 뭘 하고 있었어?" 누가 그렇게 물었죠. "나? 나 그냥 있었는데, 왜?"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지네요. 그것도 대답이라고 했을까요. 사람들은 그분의 말을 쉽게 인용하죠. "너 자신을 알라!" 분수를 알아라는 거죠. 자기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어디서 날뛰고 있느냐.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인 것 같아요. '너 자신을 알라.'
그래. 나는 생각해보았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보다 더 나은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아랫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윗지방으로 보따리 싸들고 올라가는 것인가? 그들은 말한다. "야, 윗물에서 놀아야지. 응?" , "나 떠날까?"라고 물었다. 그 중의 누군가가 말한다. "그래. 올라와! 밑바닥에서 뭐하고 먹고 살래? 개천에서 용 나는 거 봤어?" 앗, 개천에서 용이라니…… 갑자기 머리가 띵 하다. "나 개천에서 용 나는 거 본 적 있어!" 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웃기고 자빠졌네!"
때가 되면 나도 윗물에서 놀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부끄럽다. 속물인가?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러나 내 눈에는 그들이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더 늦기 전에 올라오라고. 그곳에 간들 내가 지금보다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어디 있다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가 있는 이 공간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나 지금 여기서 뭐하냐?'
당신은, 지금 당신이 있는 공간에 만족하는가? 당신은 지금 거기서 뭘 하고 있는가? 혹시 나처럼 초라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는 현실에 충실히 하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럼 결국 그 현실이란, 바로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 이 순간이거늘…… 그 충실함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이 만족하고 즐기면 되잖아. 그게 정답인데, 뭘 이렇게 고민하고 난리야? 왜 그런 말 있잖아.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 내가 존재하는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정확히 알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