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그가 논산에서 써 내려간 일기를 읽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이 작가임을 숨길 수 없는 걸까. 작가라 불리기 전에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향, 논산으로 떠났던 박범신 작가가 한 권의 일기장을 들고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아주 떠난 와중에 잠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읽은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 작가의 자전적 기록이자, 작가로서의 성찰이 주된 내용을 담아냈다. 앞서 《은교》를 읽으면서 박범신 작가를 향한 궁금증이 한껏 부푼 상태였기에, 이 책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남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일기장이라서 그랬을까? 그는 이 책을 자칭 '논산 日記'라고 했다. 자신이 논산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 아닌 사연을 어렴풋이 내비치는 것을 시작으로 2011년 어느 가을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화석화 과정을 겪는 것은 바깥의 얼굴뿐이다. 나의 문학적 에너지도 알고 보면 그 위험한 내부 분열에서 나온다.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을 지혜롭게 넘으려면 창조적인 작업에 열중하는 게 좋다. 전문가가 꼭 될 필요는 없다. 중년에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 일의 하나로, 늙어가면서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연마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적인 자아를 위로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p.156)
그가 말한다. "내가 요즘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나의 문학, 나의 세계가 지금보다 더 깊어지고 옹골차지는 일입니다."
1993년 겨울,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면서 절필을 선언했던 박범신이었다. 그 후 1996년, 중편소설《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기까지 3년이라는 공백 기간, 그동안 그는 작가로서의 모든 행위를 중단한 채로 무엇에 몰입하였을까. 공개되지 않은 그의 공백 기간이 어쩌면 이번에 내어놓은 논산日記의 곳곳에 숨어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작가로서 말하는 법인가 보다. 그의 철학이 고즈넉한 문장으로 몸단장을 마치고 일기장의 여백을 적당히 채우고 있다. 작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세상을 관철하는 모습이 꽤 흥미롭고 배울 점도 많은 듯하다.
"가족들은 내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 꼭 바보 같다"면서 웃는다. 그들은 틀렸다. 내가 '바보' 같을 땐 그냥 바보에 불과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지만, 기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쓸 때만 생각한다. 생각한 다음 쓴다고 생각하는 것도 틀렸다. 쓰면서 생각하는 편이다. "쓰고 있을 때 이외엔 생각한 적이 없다"는 몽테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p.184)
개인의 일기는 개인의 역사다. 나는 박범신이라는 사람의 역사 중 일부를 읽은 셈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아는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나의 추측이 틀렸다면, 혹 그저 자기 자신의 재발견을 위한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간소한 모습으로 하루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글을 적어온 박범신 작가의 논산日記, 나는 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혹 내가 '그는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고 인식하는 것에 그칠지라도, 이 책을 통해서 그의 문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문체가 그를 은유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게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