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25. 우리는 몸소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글쓰는서령 2012. 5. 4. 00:03

 

무엇을 몰라서 곤경에 처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

(조시 빌링스)

 

 

 

서령 : 머릿속에 그려진 완벽한 설계도가 실제 작업현장에서 반드시 유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설계도인지라 현실에 적용하는 순간이면 착오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는 지식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야 어찌 지식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실체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론과 실제가 상극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보편화된 지식 습득에 익숙해진 사람은 수많은 인과관계로 얽혀있는 현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론상으로 해석하기에는 현실이 부조리함으로 가득 차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꿰뚫어 그에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했음에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론에 강한 사람과 실전에 강한 사람이 있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우열을 가릴 순 없다. 이론과 실전 모두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동급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혹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이론과 실전의 기술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이론에 강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입증되어 체계화된 지식을 중심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그에 반해 실전에 강한 사람은 자신의 직감에 의존하는 행동주의적 성향을 지녔다. 이 사람은 지식보다는 몸소 체험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 사람의 능력을 묶어서 하나의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맹신하는 것과 같다. 이는 자칫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져 편파적 사고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대로 아는 것이 드물어 말과 행동이 위태롭기는 천하가 알아도 모자랄 판이거늘, 정작 자기 자신은 제 몸과 마음의 상태를 분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하며, 이른바 속단론자가 되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습득한 지식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래서 나는 지식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내가 습득하여 저장해놓은 지식의 진위와 실효성을 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행여나 시대에 동떨어진 지식을 토대로 속단을 범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 배우고 익힌 것일지라도 수시로 복습하여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함은 절대로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 지식이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가를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몸소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똑같은 물이라도 소금물이 될 수도 있고, 설탕물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물을 마셔보지 않은 상태에서 물맛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