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령의 기록/서령의 50+50

24. 인생이란 드라마에서 반드시 주인공이 되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글쓰는서령 2012. 5. 3. 00:16

 

세상이 이토록 존재하는 것은

꽃으로 살다 간 사람보다

거름으로 살다 간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남지심)

 

 

 

서령 :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의 존재가 빛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들의 곁에는 반드시 주변인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의 손과 발이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은 곁다리 혹은 단역배우라 불린다. 드라마에는 곁다리의 삶도 존재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빈자리를 잠시 채워주기 위한 부수적인 삶일 뿐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한다. 대중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주인공의 운명적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곁다리의 삶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곁다리의 삶을 거부한다. 오직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위한 삶이라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외부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동조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삶은 분명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나만을 위한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말이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다른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최고만을 생각하여 그 외의 일을 소홀히 한다면, 모든 사람이 최고의 자리를 갈망한다면, 도대체 최고가 아닌 것은 무엇이며, 그 일은 누가 해야 한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곁다리라고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서 존재하는 삶이라, 이 얼마나 처량하고 부질없는 것인가.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의 비중을 생각해보자. 분명한 것은 내가 존재함으로써, 나의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인생을 전적으로 떠받드는 기둥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인생에는 다양한 기둥이 세워져 있다. 바로 부모와 형제의 기둥, 친구의 기둥, 스승의 기둥…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여 배우고 익힌 지식과 지혜의 기둥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라는 인생의 지붕을 받쳐주는 것이다. 인생이 집 한 채라고 할 때, 기둥이 튼튼하게 바로 세워져야 모든 것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 법. 비로소 집 한 채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의 집, 나의 인생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곁다리처럼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던 기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는 법. 나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둥이 되어줄 수 없다. 나의 삶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삶도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기꺼이 기둥이 되어주겠노라 약속했다면, 나도 그 사람에게 기둥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곁다리, 주변인물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곁다리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마냥 내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내일은 다른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진정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처럼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역할 모두 충실히 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인생이란 드라마에서 당신이 꼭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 욕심을 버려야지만 진정한 행복을 만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