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지극히 즐겁기로는 책 읽는 것보다 나은 게 없고,
지극히 중요하기로는 자식을 기르는 일보다 나은 게 없다.
《명심보감》
서령 : 인간과 동물은 제 아비와 어미로부터 길러짐으로써, 인간은 인간답게, 동물은 동물답게 성장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인간과 동물도 있다. 이들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졌음에도 생존본능이 살아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나,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종족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동등한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4살 때부터 개들과 함께 무려 5년을 살아온 소녀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소녀는 날고기와 개 사료를 먹고, 언어능력을 상실하여 개처럼 짖는 것이 유일한 의사표현이었다. 이 모든 일은 알코올 중독자였던 부모에게 소녀가 버려지면서 일어났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대면하는 존재란 무엇이며, 그 존재는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은 양육권을 가진 자의 뜻에 따라 길러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미물일 뿐이다. 그 변변치 못한 것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가 곧 부모라는 존재이거늘, 과연 부모라는 존재만이 인간을 인간다운 존재로 길러 내는 것일까. 굶어 죽지 않으려면 제힘으로 먹잇감을 찾아야 하며, 낮이 되면 활발히 활동하고 밤이 되거든 보금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깨끗이 씻고 관리해야 하며, 위계질서와 종족 번식을 위해 서열을 겨루는 투쟁도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인간과 동물의 공통적인 생존법칙이다.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나마 인간이 동물보다 한 수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생존법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삶의 지표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부모에게서 길러진 어리석은 사람이 넘쳐난다. 분명한 건 그들이 최고의 양육법에 의해 길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행해야 할 인간의 도리를 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속된 말로 사람 구실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이 배제된 양육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존재다. 아는 것은 많으나, 인간을 위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부모가 겸손할수록 자식은 현명해진다. 그리하여 부모는 인간과 삶의 기본을 알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인간이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동물적 삶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의 미물이 마땅히 인간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본래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생존본능뿐이었으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먹고, 만지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로부터 길러지느냐도 중요하겠으나, 나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성장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된다. 인간에게 누구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종족이 전부이겠으나, 인간에게 무엇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정을 되짚어보면 쉽사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존재를 거쳐왔음을 알게 된다. 그 존재들을 통해서 나는 인간의 도리와 근본을 배웠다.
결국 그 누구도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언어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리는 글을 읽고 쓰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깨어있는 지성인을 만나서 열띤 대화의 장이라도 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가. 혹은 선현의 성찰과 지혜로 가득한 고서를 읽는 것으로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자 했던가. 그것은 보아도 본 것이 아니며, 들어도 듣지 못한 것일 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어떤 가르침으로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일한 결론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도리를 망각하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봄으로써, 진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을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