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든 당신> : 식물인간이 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향한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잠이 든 당신
"그는 닦던 손길을 멈추고는 수건에 덮인 그녀 아랫배 위에 손을 집어넣으려다가 멈췄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천천히 아내의 아랫배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순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선영아, 나도 너무 괴롭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니? 네가 그렇게나 갖고 싶어 했던 아기가 여기 이렇게 이 안에 들어서 잘 자라고 있다는데……."(p.120)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시골 변두리에 있는 우체국 집배원, 그녀는 새로 부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녀에 비해 변변찮은 자신의 직업이 한없이 초라했음에도 그녀를 향한 애정을 숨길 수 없었던 집배원. 그녀의 가족의 냉담한 태도에 굴하지 않고, 결국 결혼을 허락받는다. 두 사람은 물질적인 행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행복한 일상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무단결석으로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학생을 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그녀는 허겁지겁 집을 나서게 된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산속에 위치한 계곡이었고, 늦은 오후에 혼자서 집을 나서는 모습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암시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꿈속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녀는 몸의 중심을 잃고 계곡에서 추락사를 당한다. 뇌에 심한 부상을 당하고 황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장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그녀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 《잠이 든 당신》은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피는 한 남자의 애절한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기에, 우리가 소설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아내를 위해 아이를 지워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극심한 고통에 휩싸이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에게 가슴이 미어질 듯한 통증을 유발한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아이를 지워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아내는 마치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다.
"임신 삼 개월이 지나 사 개월 가까이 되자 그녀의 아랫배가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태아가 급속하게 커지면서 영양을 빨아들이는 만큼 선영의 얼굴은 어쩔 수 없이 광대뼈가 드러나고 쇄골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석민은 그녀에게 매일 세 끼의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그녀의 온몸을 닦고 주물러주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는 대화를 시도했다."(p.147)
잠이 든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이야기 그리고 사랑……
《잠이 든 당신》은 부부의 행복했던 순간, 아내를 짝사랑하던 남편의 회상, 아내의 사고 그리고 기적 같은 치유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실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식물인간의 상태에서 아이를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모습은 기적처럼 그려진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아내와 뱃속의 아기에게 제공했던 남편의 모습… 책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아기를 출산하고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던 남자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에 임하는 자세'에 대하여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이 책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일부는 극적으로 과장하거나 축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부의 기적 같은 사랑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남자가 사랑에 임하는 모습을 주목하였으면 하는 것, 그래서 지금 사랑을 하고,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을 떠나야만 하는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남자의 독백과 이따금 여자의 의식이 보여준 독백, 그 조화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