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절망 속에서 피워낸 희망의 꽃, 장영희가 말하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 (…)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연함과 용기, 당당함과 인내의 힘이자 바로 희망의 힘이다. 그것이 바로 이제껏 질곡의 삶을 꿋꿋하고 아름답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힘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가 무언으로 일생 동안 내게 하신 말씀이었고, 내가 성실하게 배운, 은연중에 '내게 힘이 된 한마디 말'이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만난 사연을 간직하는 사람의 이야기…
추억이 그리운 사람, 그가 정작 기다리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연이 행복과 불행을 오가는 위태로운 것일지라도… 가진 것이라곤 살아온 이야기뿐인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 누군가와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친밀하고도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혜받은 자의 삶일지라도 굴곡진 산등성이를 넘지 않고서, 제대로 된 인생이었노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굳이 힘듦을 자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에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읽었다. 불의의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여성의 삶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그러고도 살 수 있어요?"라고 묻는단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네.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는 걸요. 살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깐요." 그녀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과감히 드러냈다.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 삶의 일부분이었으니… 그리고 여기에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장영희가 있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본문 중에서
세월로 하여금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무렵이면… 이미 산 너머로 해가 가라앉고 짙은 어둠이 찾아오고야 만다. 떠오르는 태양이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면, 지는 태양은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인간의 늙음을 뜻하는 것이겠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으면서 장영희라는 사람이 지닌 가치관을 마음으로 졸졸 따라다녔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영문학자이자 수필가·번역가로서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시대의 젊은 청춘, 늦깎이 청춘을 향해 '나 장영희가 산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 삶이 지닌 의미가 비단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보다 죽음을 갈망하게 만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지켜낸 불굴의 의지, 자신으로 하여금 위안과 용기를 얻는 사람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자 끊임없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故 장영희 작가였다. 한 권의 수필집에 지나지 않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문득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의 삶과 장영희 작가의 삶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망망대해와 같은 삶이었으나, 희망이라는 커다란 물고기를 발견함으로써 삶의 끝자락까지 거침없이 나아갔던 노인의 모습…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성숙해지는 인고의 시간… 비록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자신의 인생을 홑이불로 덮어야만 했을지라도,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남겨졌다면… 그것이 바로 누군가에게 살아갈 기적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의 의미를 그렇게 새겨넣고 싶다. 故 장영희 작가가 살아온 기적, 그것을 이제는 우리가 살아갈 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