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요로레이리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 뭐, 뭐야... 카레가 식을 때까지 망연자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본문 중에서
그는 그녀를 떠올리기에 앞서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다. 무명의 설움은 둘째치고 반듯한 용모의 아버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 휘황찬란한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의 엄마이기도 한 자신의 아내는 등골이 휘도록 온갖 잡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을 가꾸기에 바쁘다. 그의 엄마에게 남편이란 사람은… 너무나 과분한 사람이었다지. 볼품없는 엄마의 외모는 항상 사람들의 선입견을 자극했다. 남자가 아깝다는 둥… 그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를 보면서 정말 두 사람은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가 맞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우연찮은 기회를 거머쥐고 반짝스타가 되는가 싶더니,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어 그와 아내를 두고 떠난다.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온몸에 성한 곳이 없는 아내를 두고 미혼으로 위장하여 연기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아리따운 여자와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두둑한 돈뭉치를 그와 아내에게 챙겨주고 떠나는 그의 아버지의 모습… 나의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의 숙주였단 말인가?
「오후의 거리를 기억해요. 돋보기를 통과한 듯 쏟아지던 별과, 이제 다시는 납득할 수 없을 여자로서의 나 자신과... 너무나 선명했던 그 그림자를 잊을 수 없어요. 돌아오던 먼 길과, 돌연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한 나 자신을 잊지 못해요. 자신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여자는... 그림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해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여자예요. 미안해요.」- 본문 중에서
그의 나이 스무 살, 지인을 통해서 모 백화점 주차관리요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아버지가 떠난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는 요양을 위하여 집을 떠나게 되고, 그는 대학을 포기함과 동시에 돈벌이를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백화점에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어쩜 저렇게 못생겼을까. 엄청난 추녀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료직원들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어도 없는 취급을 했으며, 그녀는 그러한 반응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여직원들의 인기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그가 추녀를 향해 연민 혹 동정을 느끼게 되면서 <죽은 왕녀의 파반느>의 곡조가 구슬프게 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의 잔혹함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살아가는 이름없는 잡초같았다. 이 책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왜 세상은 못생긴 여자를 감추려고만 하는 걸까. 그의 아버지가 끝끝내, 아름다운 것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듯이, 세상은 아름다움의 권력에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내면이 지닌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독백이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도 모르실 겁니다. 당신을 만난 후로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었고... 남과는 다른 이유로 흘리는 눈물이었어요. 왜 나는 아름다운 여자가 아닐까 울기도 했고, 차라리 당신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남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울기도 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갓 이십대에 진입한 청춘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외모지상주의가 주범이 되어 사회를 쥐고 흔들며, 개인의 영역마저 파렴치하게 들추어내고, 온갖 고통과 처참함을 주입하고 있다. 얼굴이 아름답지 않은 그녀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장차 근거없는 짝퉁으로 물들어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남자의 독백이 독자를 강하게 설득한다. 당신은 이것이 진정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빛과 빛이 한데 어우러져 커다란 빛을 발산하는 것인데, 오로지 자체발광이라는 듯 턱을 치켜세운 잘난 얼굴들은 무어란 말인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래전에...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입니다.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마음의 단두대에 올라 스스로를 절단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피... 흥건히 세상을 적시던 마음의 출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발밑을 뒹구는 저 얼굴을 이제 누가 찌르고 찬다 해도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비단 외모지상주의만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에 말마따나 가혹한 세상 옆에 들러리처럼 서 있는 시녀가 혹 우리의 자화상이 아니었던가라는 사색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鬪病)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골목의 끝에서... 흐린 기둥의... 불빛 아래서 나는 속삭였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풀어내는 작가의 문체가 인상적이다. 제법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힘이 있다. 천천히 흐르는 물처럼 읽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소재였기에, 거부감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진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왜, 행여나 나는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사회가 제시하는 규격에 맞춘 얼굴을 남몰래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끔찍한 추측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왜, 세상은 치밀하게 짜여진, 완벽한 조각상같은, 향기롭고 아름다운 인간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왜,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발휘하고, 그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함에 빠지도록 하고, 그들은 외면의 완벽한 무장으로 사회의 이익을 철저히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과감히 성형수술에 애써 벌어놓은 돈을 투자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눈에 아름다운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길들여진 자들의 안경 속 세상일 뿐……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이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 자체는 모순의 극치를 달린다. 그저 신은 인간을 창조했을 뿐이다. 우리의 욕망이 완전한 인간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이십대의 성장소설임과 동시에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이 한번 쯤은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