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서령 2011. 9. 19. 17:42

 


운영전

저자
윤의섭 지음
출판사
두산동아 | 2006-08-05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참 좋은 우리 고전』시리즈 제10권《운영전》. 본 시리즈는 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그대와 몇 번 눈이 마주친 뒤로 내 마음은 들뜨고 넋이 빠져나간 듯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매일 그대가 있는 궁 쪽을 바라보며 애만 태울 뿐이지요. 그러다 전에 흙벽을 통해 주신 편지로 당신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나서는 그리움이 더욱 심해졌다오. 나는 당신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며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처지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오.」- 본문 중에서

 

서로 다른 신분의 남녀가 보여주는 애틋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낸 애정 소설 <운영전>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절묘한 관점에서 시작되는 김 진사와 운영의 이야기. 이 소설은 유영이라는 선비가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 김 진사와 운영의 혼령을 만나서 그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전해듣게 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그들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운영전>은 안평대군의 궁궐인 수성궁을 배경으로 그 안에 기거하는 궁녀들의 삶을 보여준다. 수성궁에서 안평대군은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였고, 때로 뛰어난 선비와 학자들을 궁에 불러들여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가하면, 각자의 재능을 뽐내는 시간을 종종 만들었다. 실력이 날로 높아졌음에 내심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던 안평대군은 궁녀들을 모아놓고는 "하늘이 사람에게 재주를 내리셨을 적에 남녀 차별을 두었겠느냐? 지금 세상에 글 잘 짓고 학문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내 보기엔 모두 그저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너희들이 힘써서 공부해 보아라. 열심히 해서 실력을 보여다오."라고 말한다.

 

 

 

 

궁녀 운영과 김 진사의 가슴 아픈 사랑이 시작되는데… 안평대군을 찾아온 김 진사,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는 묵묵히 거문고를 뜯고, 단소를 불며, 술잔을 바치고, 벼루를 받드는 궁녀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 김 진사의 정갈한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궁녀 운영…… 한평생 안평대군의 궁녀로서 살아야만 했던 운영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 존재하는 김 진사를 애타게 바라보기만 한다. 김 진사 역시 운영을 향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결국 두 사람은 위태로운 외줄 타기와 같은 만남을 이어간다.

 

「"나리.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원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듯 사람에게는 모두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는 굳게 문이 닫힌 깊고 깊은 궁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들은 꽃만 봐도 달만 봐도 눈물이 나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의 즐거움을 어찌 모르겠으며, 어찌 참기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저희는 오로지 대군님 모시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대군께서 저희를 죽이신다면 너무 억울하여 저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두운 하늘만 떠돌게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매번 운영이 지은 시를 통해서 임을 그리워하는 느낌이 짙다고 생각했던 안평대군이었다. 궁궐에서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운영을 만나기 위해서 밤이 되면 담장을 뛰어 넘어와 운영과 사랑을 속삭이던 김 진사, 그러나 그들의 모험적인 사랑도 운영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운영전>은 고전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회상적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 여성으로서의 삶을 갈망하던 운영은 김 진사를 만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으나, 순결하고 지조있는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둔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김 진사는 운영과의 사랑이 현실적 장벽에 부딪히는 순간을 잘 참아냈으나, 운영의 뒤를 따라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운영전>은 남녀 간의 자유로운 교제는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기시 되었던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유교 사상에 따른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엄격히 강조하였기에, 김 진사와 운영의 교제는 그저 허황된 꿈보다 못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음양의 조화와 같은 것'이라 말하는 운영의 친구 궁녀 은섬을 보면 비록 도덕적 윤리를 내세우며 인간의 감정을 억압한들, 어찌 그 본성마저 짓누를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운영과 김 진사, 그러나 유영에게 나타난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이었다. 죽음마저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니… 현존하는 고전 소설 중 유일하게 비극적인 결말을 보이는 작품 <운영전>이다.